필리핀 선교, 어제, 오늘,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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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선교 어제 오늘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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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선교 어제 오늘 내일 » 김활영 원로선교사(장양백 사모) » 

들어가는 말

필리핀은 아시아의 유일한 기독교 나라다. 비록 명목상의 기독교인이나 국민의 95% 가까이 세례를 받고 교회에 적을 두고 있다고 믿는다. 또 문화와 사회조직이 기독교를 바탕에 두고 있다. 그러나 소위 거듭난 신자의 수도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비교하여 결코 적지 않은 기독교 나라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배경에는 식민지로 선교의 문을 열고, 지난 100년이 넘는 기간에 미국교회가 이룬 업적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 30년 가까이 필리핀 교회가 대 성장을 이룬 시기에 한국선교사도 대거 몰려와서 성장에기여한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필리핀에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 아니고 한국이다. 1 최근 Philippine Challenge에서 발행한 선교사 주소록을 참조 물론 300여년의 스페인 식민과 천주교회의 영향을 제외하고는 오늘의 필리핀을 바로 이해할 수 없다.

한국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한 ‘70년대는 한국교회나 필리핀 교회가 모두 영적으로 활기를 띄고 해외 선교에도 눈을 뜨기 시작한 때였다. 여러 면에서 두 나라는 비슷한 형편이었다.2 한국교회는 빌리그래함 전도대회(1973)와 엑스폴로 74를 위시하여 대규모 영적 각성과 전도 운동이 전국을 강타하였고, 교회 성장이 부쩍 눈에 띨 정도로 현저해 젔는가 하면 선교운동이 서서히 힘을 얻어가던 시기였다. 경제적으로 빈곤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관민의 노력이 열매를 맺기 시작하여 80년대는 훌쩍 성장을 하였고, 정치적으로도 군사 정권이 민주세력으로 대체하기 위한 몸부림이 열매를 가두어가고 있던 시기였지만, 선교사에게 여권을 주거나 해외 영행을 허락하는데 인색하였던 가난하고 불안한 때였다. 필리핀 사회는 계엄령 하에 불안이 고조되어 있었고, 경제적으로는 점점 빈부의 격차가 벌어져가고, 반군들이 정치적으로 안전을 위협하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한편 필리핀 교회는 베르린 대회(1966)에 동참하였던 일련의 복음주의 교회 지도자들이 돌아와 전국 교회를 향하여 부흥과 복음 확장으로 호소하여 큰 반향이 얻었고, 영적으로는 복음 확장운동이 불이 붙기 시작하든 때여서 빌리그래함 전도 학교 (1977)와 DAWN 운동에 힘을 얻어 복음주의 교회들이 역사에 없었던 대 성장을 향해 진군을 시작하는 때였고, 가장 풍성했던 추수의 기간이었다. 모두 가난하고, 눌리고, 불안한 가운데 있었으나 신앙적으로는 주님의 축복을 누리고 있던 때였다. 이런 복음 확장의 좋은 기간에, 한국 교회는 필리핀에 선교사를 보내기 시작하고 초문화 선교사역을 시작하였다. 특히 다른 지역과 달리 교포교회를 중심으로 선교를 시작하지 않고, 처음부터 초문화 사역으로 시작하였다. 그때 이후 30년은 한국교회의 선교사역은 세계교회가 경이의 눈을 뜨고 볼 수밖에 없는 엄청난 성장을 누렸고,3 ‘70년대 초에는 세계에 파송한 선교사가 10가정이 못되는 시대였으나, 30년이 지난 지금은 20,000명대의 선교사를 파송한 선교 대국이 도었다. 필리핀 교회 역시 역사에 없었던 대 부흥을 체험하고 굉장한 교회성장을 기록하여 아시아에서 다음 세대를 주도하는 선교 대국으로 발 돋음 하고 있다.4 필자가 도착하였을 때는 진보와 복음적인 개신교회를 다 합하여 7000 교회가 넘지 못하였으나 30년이 지난 지금은 5만을 훌쩍 넘어서는 교회로 성장하였다. 이 성장의 이면에 한국 선교사들의 사역이 차지하는 몫도 적지 않다.

이러한 필리핀 선교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는 데는 물론 한국선교사가 도착하기 전 80년 가까운 서구선교사, 특히 미국 선교사들의 활약은 400년 전통을 가진 천주교회의 세력에 도전하였던 역사를 무시하고는 설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많은 선교 현장처럼 필리핀에서도 한국선교는 100년 혹은 200년 서구선교의 추수밭에 남겨진 이삭을 거두어들이는 작업을 하여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필리핀 선교의 어제와 오늘을 사역의 유형과 전략적 측면에서 살펴보면서 반성해 보려고 한다. 즉 지난 30년 동안 무엇을 하였는가를 생각해 보자. 그리고 다음으로 내일의 선교방향을 가늠해 보면서 구체적인 전략을 모색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어제

1970년대에 들어와서 현대 한국선교가 꿈틀거리기 시작할 때에 필리핀은 처음 주목받은 선교지중의 한 곳이었다. 일례를 들면, 중국 산동선교 팀 이후, 처음으로 장로교 선교부가 팀을 구성하여 본격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한 곳이 이곳이다. ‘80년대에 들어와서 각 선교 단체마다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필리핀을 반드시 포함하였다. 그 결과 ‘90년대부터 문이 열리기 시작한 중국을 제외하고는 계속적으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투입한 선교지다.5 지금 GMS만 100명이 넘는 선교사를 필리핀에 파송하고 있다. 적어도 1000명이 넘는 한국 선교사들이 여러 분야에서 활동 하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 숫자는 다른 나라에서 온 선교사들의 배나 되는 숫자일 것이다. 초기 현대 한국선교에서 모델이 되어 타 선교지가 여러 가지를 배워 갔던 영광스러운 선교현장이었다. 동시에 많은 문제를 제시한 선교지이기도 하다. 또한 대규모 선교사단을 파송한 현장답게 한국교회를 끌어들이는 매력 있는 사역과 프로젝트도 많았고, 동시에 불협화음과 물의를 일으킨 사건 또한 적지 않았다. 아마도 다수의 한국 선교사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신학교)을 처음 시작한 곳도 필리핀이며, 현재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신학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가하면 MBC에 방영될 만큼 매우 부정적인 사례가 흔한 현장이기도 하다. 이 현장을 돌이켜 보고 정리할 때에 주로 전략적 측면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전략이란 목표 달성을 위한 방법이며,. 목표는 철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즉 왜 선교해야 하는가? 무엇이 선교인가? 이런 물음에서 어떻게 라는 전략이 세워지기 마련이기에 선교신학을 언급하는 것 역시 중요한 반성의 근거일 것이다.

초기의 선교는 분명한 나름의 전략이 없었다. 같은 한국선교사라도 네비게이토 들이나 CCC같은 팀들은 자기 나름의 전략과 방법을 어디서나 적용하고 있었지만 신생 선교 팀들인 대부분의 한국 선교사들에게는 서구 선교사들의 전략을 흉내 내어보기도 하고 한국에서 경험하였던 사역을 적용하여 보기도하였다. 그러나 가장 인기도 있었고 자연스러웠던 교회개척과 나아가서는 교단설립이란 목표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전략이 구사되었다. 그리고 교회개척이란 목표를 두고 전개한 전략도 한마디로 지난 30년 동안에 독특한 전략을 세우고 추진한 선교 팀들이나 선교사가 적지 않으나, 일관성 있으면서, 그리고 신학적 확신에 근거한 내 세울만한 전략은 정리하기 쉽지 않다.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합동 측의 사역을 분석하여 보면 초기 10년 안에 3명의 목사를 장립하고, 19개의 교회를 개척하여, 600 여명의 세례교인들로 구성된 미니교단이지만 필리핀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of the Philippines)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다음 10년 안에 4개의 노회로 발전되고 총회를 조직하여 현지인들에게 지도력을 넘겨주게 된다. 그리고 그다음 10년은 선교사들이 동역자와(Partner) 참여자(Participant) 위치에서 새로운 사역개척을 시작하였다. 필리핀 장로교단이란 합동 측의 사역은 통합, 고신, 합동보수 교단과, 미국의 정통 장로교회(OPC)와 미국장로교회(PCA)까지 협력한 사역이기도 하다. 합동 측의 선교신학은 복음전파와 그에 따르는 교회개척이란 전통적 보수신학에 바탕을 두고, 네비우스 원리를 기반으로 여러 가지 전략을 구사하였다. 이들의 선교 전략은 전형적인 서구 선교부들의 모방으로 시작되었고, 약간의 수정과 어중간한 방법론으로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는 외형적으로 적지 않은 성과라고 자타가 평가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성과를 두고 역사 앞에서 고민하고 있는 실정이다.6 모방을 위시하여 시행착오를 통하여 많은 공부를 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Mission Comity는 모방의 좋은 예이다. 즉 합동은 마닐라 북부지역, 통합은 마닐라 남부지역, 고신은 비사야 지역으로 나눈 선교지 분할 정책은 잘 지켜지지는 않았으나 매우 좋은 전략이었다. 그러나 현장 선교부 조직은 미국 교단선교부의 여러 형태를 모방하였으나 실제로 실패한 예로 들 수 있다. 한국교회의 특수성은 단순히 장로교회란 조직형태 만으로는 미국교회와 같지 않고 그리고 긴 역사적인 발전 과정을 생략한 체 현재의 조직을 그대로 옮겨 놓으니 제대로 기능을 하기가 어려웠다. 네비우스 원리도 적용의 방법이 문제였지만 한국에서처럼 필리핀에서도 그대로 먹혀들지 않는 고민을 많이 하였다. 이 선교부의 전략에 의거하여 새로 전도하고 하여 개척한 교회나 양육한 지도자가 아니다. 즉 이삭줍기를 통하여 얻은 지도자, 그리고 이 지도자들에 의하여 개척된 교회가 많다. 물론 이 지도자를 따로 훈련도 하고 안수하기도 하고, 지원하여서 생긴 교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예배당을 지어 주거나 아직도 교역자 생활비를 부담하는 선교정책은 실패의 씁쓸함을 지금도 맛보고 있다. 더구나 자신학화( (Self-Theologizing) 과정은 매우 미진하였다. 그 결과 필리핀 토양에 장로교회의 조직과 형태를 접목함에서 한국장로교회의 모습을 많이 닮아가고 있다.

다수의 장로교단을 위시하여 한국교회의 중요 교단선교부와 각종 선교단체들이 ‘80년대에 들어오면서 물밀듯이 들어와 정착하기 시작했다. 국제적인 선교 기관에 배속되어 사역하는 선교사 있었으나, 90년대 후반부터는 아예 현장에서 조직하거나 설립된 선교단체가 등장한다. 물론 기존 필리핀선교단체나 교단에 일원이 되는 선교사들도 있었다.7 장로교단 (합동, 통합, 고신, 기장, 대신, 개혁, 합동정통, 합동중앙, 합신 등), 감리교, 성결교(예성,기성), 하나님의 성회, 나사렛, 그리스도교회 등과, 바울 선교회, GP, 동남아, 삐나뚜보, 코필어린이, 임마누엘, 코람필, 코람데오, 아세아 연합 선교회 등등 다수의 전통적인 선교회와 토착 선교회가 있고, SIL, OMF 등의 국제 선교단체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선교기관을 통하여 선교사비자를 얻고 활동하는 선교사들이나 팀 사역보다는 대부분 개인적으로 사역을 전개함으로 다양한 전략이 백출하고 있다고 볼 것이다.

주 사역이라 할 수 있는 교회개척에서 전략을 살펴보면 한국교회를 휩쓸었던 교회성장 이론에 근거하였고, 특히 질적, 유기적인 성장 측면보다도 양적 성장에 치우진 성급한 전략이 선교사들과 후원자들이 선호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극단의 경우에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교인을 확보하기 위하여 수평이동이나 교회간판을 바꿔다는 일도 서슴치 않은 선교사가 있다.8 10여년동안 한인교회를 개척담임하고 있는 한 선교사는 150개 이상의 현지인 교회와 만 명에 육박하는 교세를 자랑하고 있다. 이 숫자는 몇 개의 장로교단선교부가 연합하여 30년간 사역한 교세와 맞먹는다. 예배당을 지어 준다든가, 사역자의 사례를 지원하는 것은 네비우스 원칙이나 토착교회의 건강을 위하여 좋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선교사는 없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이런 방법으로 교회를 개척하고 있다. 더 많은 교회와 교인을 확보하는 것을 선교의 목표로 생각하고 있는 교회와 선교사가 많다는 뜻이다. 건강하고 제생산하는 교회, 참 제자들이 모임인 교회를 개척한다는 목표가 아닌 경우가 많다. 선교의 본질에 대한 재고가 요청되는 부분이다. 예배당을 지어주고 사역자를 지원하는 전략이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고 긍정적인 면도 많다. 다만 목표가 분명치 않아서 많은 투자에 비하여 성과가 적은 것이 아닌가? 현지 교회로부터 감사보다 비판의 소리가 더 높지 않은가? 서구 선교사들로부터 선의 경쟁 상대보다는 낮춰보는 평가를 받고 있지 않는지? 필자도 자신의 사역을 중심으로 돌아볼 때에 교회개척에서는 고국에서처럼 철저한 헌신과 영광스런 성과를 끌어내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신학교육은 인기 있는 사역이었다. 1983년 이후 한국선교사들이 세운 신학교는 상당한 숫자에 이른다. 교역자 재훈련과정을 포함하면 선교단체마다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많은 선교사들이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사역자를 양산하여오고 있다. 웬만한 지도자는 한국교회에 데려가서 한국교회를 보여주고 견문을 넓혀서 자질향상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신학교를 중심으로 교단이 형성되고 교세가 확장되는 것을 경험한 선교사들은 교회개척과 신학교육을 분리할 수 없는 전략적 동심원으로 생각하여 자원을 투입하였다. 경험부족, 영세성, 성급함으로 말미암아, 난립이다 수준저하란 비판의 소리가 안과 밖에서 들리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이 분야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으로 사역자의 중요성을 강조한 반면 평신도들의 기능을 개발하는데 눈을 뜨지 못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되었고, 수준에 대한 의구심과 운영의 효율성에대한 비판으로서 한국선교사들의 프로그램 중에서 PABATS(Philippine Association for Bible and Theological Schools)에서 인준 받은 학교는 많지 않다는 점이다.

전도에서부터 의료, 교육, 지역개발, 구제, 어린이, 및 특수사역 등 다방면으로 전략을 구사하여 일천 여명 선교사들이 뛰고 있는 현장은 필리핀이란 무대가 좁을 지경이며, 한국선교사들에 의하여 필리핀이 복음화 될 것 같은 열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한국선교의 훈련장으로서 필리핀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날마다 열편이 넘는 대형 비행기들이 필리핀의 여러 국제공항을 통하여 한국교회의 단기선교 팀, 비젼트립 팀, 현장방문 팀들을 쏟아내고 있다. 허지만 뒷마감을 하고 결과를 문서화하는데 취약한 한국선교사들은 제대로 성과를 수치로 나타내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비판적인 평가를 해보고 싶다.

1. 팀 사역으로 이어져 효과를 극대화하는데 약하였다.
2. 팀 구성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나 강한 팀이 되기 어려웠다.
3. 항상 구체적인 목표나 방향이 분명하지 못하였다.
4. 결과적으로 원칙적인 길보다 쉬운 길을 택하는 경향이었다.
5. 너무 한국적이었고, 토착화 상황화가 늦다.
6. 평신도 선교사 사역을 개발하는데 실패하였다.
7. 개척한 교회 대부분이 건강도가 낮다. 질과 양의 상관관계의 이해가 부족하다.
8. 지도자 양성에서 제자화의 분명한 철학이 없다.
9. 사역이 총체적(wholistic Approach)이기보다는 너무 특수 사역에 치우진 것 같다.
10. 한 박자가 늦은 선교 감각을 극복하여야 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부족하였다.
11. 특히 필리핀 선교사들은 국제적인 선교의 흐름에 감각이 둔하다.
12. 세계 선교에서 필리핀교회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약한듯하다.

필리핀 선교의 어제는 영광스런 찬사와 함께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여기서 겸허하게 오늘을 살펴보고 내일을 향한 비전을 새롭게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오늘

오늘의 필리핀 선교현황을 정확하게 보고 분석하기는 어렵다. 시각에 따라서 같은 상황이라도 굉장히 다르게 보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교의 주체인 한국교회와 대상인 필리핀과 필리핀교회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필리핀에 있는 한국선교 팀들은 한국교회를 배경으로 성장하였다. 지금 이 한국교회는 선교의 사명감으로 들떠있으면서, 필리핀에 대하여서는 선교사를 더 보낼 필요가 없다는 진보적인 주장과 동시에 가장 효과적인 선교지로 보고 적극 투자하자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양 주장이 다 일리가 있다. 차이점은 신학적 입장 차이라고 볼 수도 있고, 다른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무엇이 선교인가? 어떤 전략이 효과적인가? 하는데 차이일 것이다. 적극 투자 쪽은 좀 근시안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지상명령 인식에서 출발하고, 지구촌과 세계적인 선교흐름에 민감한 자들은 필리핀은 이제 선교지로 보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 서구 선교사들은 필리핀을 다수가 철수하였고 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정착한 한국 선교사들이 철수 한다는 것은 한국적 상황에서는 심각한 문제들을 넘어야 한다. 대규모의 선교세력이 필리핀에 건재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필리핀 교회는 어떤가? 비교적으로 건강하고 선교적인 필리핀 교회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지금 필리핀은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불안하나 대신 영적으로는 매우 복음적인 상황이다. 즉 PMA (Philippine Missions Association) 는 KWMA (Korea World Mission Association) 보다 먼저 조직되고 선교사 숫자로는 적게 파송하였다고 할 수 있어도 PM39 Philippine Mission Movilizing Movement 의 약자로 2010년 까지 200,000명의 필리핀 선교사를 파송하겠다는 야심찬 비전이다.비전으로 흥분하고 있다. 날마다 3500명의 필리피노들은 취업을 위하여 니노이 아뀌노 공항을 비롯하여 국제공항을 떠나고 있는데 그들 중에는 다수의 Tent Maker 선교사들이 있다. 아시아를 방문하면서 필리핀 선교사를 요청하는 곳이 많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가난한 현실이 선교의 방해요소가 아니라 유리한 조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에 필리핀교회는 무척 성장하였고, 선교의식이 고양되어 있다. 영어는 이들을 한국 선교사들 보다 훨씬 발 빠르게 세계적 선교 추세에 편승하도록 돕고 있다.

지금 세계적인 선교의 흐름에서 화두는 어떤 것들인가? FTT, UPG, CPM, MPM 등등의 용어에 익숙한가? House Church Movement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신학적으로 교회론에서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였다. 선교학적으로 Mission Planting Movement 란 혁명적인 전략이 관심의 초점이다.

이런 오늘의 선교 환경에서 필리핀에 있는 한국 선교사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내일

LA에 소재한 William Carey International University 총장인 Tim Lewis 는 사울의 무기와 다윗의 물매란 글에서10 Mission Frontiers (May-June, 2007, P 17-21), 골리앗이란 사탄의 세력 앞에선 아시아 (Global South) 선교는, 사울의 훌륭한 갑옷과 창이나 방패가 아니라 다윗의 물매가 효율적임을 역설하였다. 왜냐하면 서구 (Global North) 선교에서는 이제까지 갈고 닦고 발전시킨 사울의 무기와 같은 현대적인 선교전략이 효과적이지만, 다윗에게는 맞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물매와 물매 돌들을 찾아야한다. 우리에게 익숙하고 경험하였던 전략과 방법을 찾아서 그 전략을 하나님께 맡겨서 하나님께서 UPG 를 복속시키도록 하셔야한다. 중국교회가 공산주의란 골리앗 앞에서 지난 반세기를 통하여 발견한 다윗의 물매를 가지고 싸워온 모습은 다윗의 승리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물매 돌중에 하나가 가정교회란 것이다.

필자는 나름대로 향후 방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안을 생각하여 보았다.

1. 교회개척은 큰 목표(Objectives)와 작은 목표 (Goals)를 정한다음, 대상(Target)을 확정하고 전략을 세워서 자원을 투입해야한다는 기본원칙으로 돌아가자. 예를 들면 FTT (Finishing The Task) 정책을 따라 과감하게 무슬림이나 Bicolano(4,582,080중에서 복음화율 1.23%) 같은 종족을 대상으로 집중 사역 할 수 있을 것이다.
2. 교회의 구조에 대한 신학적인 재고가 필요하다. 예로 자립이 불가능한 사회구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는 건물과 교역자 사례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3. 기존 교회를 어떻게 건강을 회복하고 번식하는 교회로 거듭나도록 돕는 특별사역이 필요하다.
4. 지도자 양성에서도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하여 전통적인 교육체제보다는 건강한 교회에 필요한 지 도자에 초점을 두고, 특히 목사와 평신도를 구별하지 않는 프로그램 개발이 요구된다.
5. 어린이, 청소년, 청년, 여성을 전문으로 상대하는 특수 사역은 경험을 살려서 소개하고 개발해야한다.
6. 기도원과 같은 영성회복 사역은 환영 받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사역이다.
7. 재비 한인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아시아 복음화에 영향을 미칠 사역을 개발해야한다.
8. 자비량 선교사역을 위해 비지네스를 개발하는 과감한 시도도 이제는 있을 때가 되었다.
9. 재정 투자에서 명확한 정책을 가지고, 문서화된 재산관리를 통하여 정직한 청지지기가 되어야한다.
10. 사역을 수용하고 뒷받침하는 선교부 조직에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자. 안주할 수 있거나 무사한 선교부가 아니라, 일거리를 주고, 여건을 마련하여 주며, 밀어주는 선교부가 요구된다. 사역과 뜻이 맞는 팀을 만들어 주는 선교부로, 역동적이며 가변적인 팀을 만들어 가는 선교부가 돼야한다.
11. 필리핀을 한국선교 발전의 터전으로 활용하는 사역을 개발하자(훈련원, 단기 선교 프로그램, 등)
12. 필리핀 교회가 세계 선교에 앞장서도록 돕는 사역을 개발하자.
13. 필리핀을 넘어서 아시아를 엮는 네트워크 화된 사역을 개발하자.
14. 현장 선교부가 모든 사역을 주관한다는 사명과 철학을 가지고 조직이나 운영에 임하자.
15. 세계 복음화를 늘 염두에 두고 여기서, 지금의 사역을 계획하고 추진하여 역사성을 있게 사역하자

나가는 말

필리핀 선교의 내일은 우리선교사의 손에 달려있다. 나의 물매를 발견하고 주님의 심장으로부터 오는 거룩한 분노가 없이는 혹독한 무슬림, 냉엄한 힌두, 은근하게 도전하는 불교권이나 공산권의 UPG를 상대할 수 없다. 안이한 재비 한인선교사들은 가마솥의 개구리 같이 자기도 모르게 삶겨버리기 전에 벌떡 일어나 뛰어나와야 한다. 반짝이는 물매 돌을 찾아서 함께 기도하고 연구하고 시험해보는 과감한 도전정신이 요구된다. 필리핀교회와 행동을 같이해야 한다는 조건도 기억해야 한다.

 

각주
  • 1
    최근 Philippine Challenge에서 발행한 선교사 주소록을 참조
  • 2
    한국교회는 빌리그래함 전도대회(1973)와 엑스폴로 74를 위시하여 대규모 영적 각성과 전도 운동이 전국을 강타하였고, 교회 성장이 부쩍 눈에 띨 정도로 현저해 젔는가 하면 선교운동이 서서히 힘을 얻어가던 시기였다. 경제적으로 빈곤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관민의 노력이 열매를 맺기 시작하여 80년대는 훌쩍 성장을 하였고, 정치적으로도 군사 정권이 민주세력으로 대체하기 위한 몸부림이 열매를 가두어가고 있던 시기였지만, 선교사에게 여권을 주거나 해외 영행을 허락하는데 인색하였던 가난하고 불안한 때였다. 필리핀 사회는 계엄령 하에 불안이 고조되어 있었고, 경제적으로는 점점 빈부의 격차가 벌어져가고, 반군들이 정치적으로 안전을 위협하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한편 필리핀 교회는 베르린 대회(1966)에 동참하였던 일련의 복음주의 교회 지도자들이 돌아와 전국 교회를 향하여 부흥과 복음 확장으로 호소하여 큰 반향이 얻었고, 영적으로는 복음 확장운동이 불이 붙기 시작하든 때여서 빌리그래함 전도 학교 (1977)와 DAWN 운동에 힘을 얻어 복음주의 교회들이 역사에 없었던 대 성장을 향해 진군을 시작하는 때였고, 가장 풍성했던 추수의 기간이었다.
  • 3
    ‘70년대 초에는 세계에 파송한 선교사가 10가정이 못되는 시대였으나, 30년이 지난 지금은 20,000명대의 선교사를 파송한 선교 대국이 도었다.
  • 4
    필자가 도착하였을 때는 진보와 복음적인 개신교회를 다 합하여 7000 교회가 넘지 못하였으나 30년이 지난 지금은 5만을 훌쩍 넘어서는 교회로 성장하였다. 이 성장의 이면에 한국 선교사들의 사역이 차지하는 몫도 적지 않다.
  • 5
    지금 GMS만 100명이 넘는 선교사를 필리핀에 파송하고 있다. 적어도 1000명이 넘는 한국 선교사들이 여러 분야에서 활동 하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 숫자는 다른 나라에서 온 선교사들의 배나 되는 숫자일 것이다.
  • 6
    모방을 위시하여 시행착오를 통하여 많은 공부를 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Mission Comity는 모방의 좋은 예이다. 즉 합동은 마닐라 북부지역, 통합은 마닐라 남부지역, 고신은 비사야 지역으로 나눈 선교지 분할 정책은 잘 지켜지지는 않았으나 매우 좋은 전략이었다. 그러나 현장 선교부 조직은 미국 교단선교부의 여러 형태를 모방하였으나 실제로 실패한 예로 들 수 있다. 한국교회의 특수성은 단순히 장로교회란 조직형태 만으로는 미국교회와 같지 않고 그리고 긴 역사적인 발전 과정을 생략한 체 현재의 조직을 그대로 옮겨 놓으니 제대로 기능을 하기가 어려웠다. 네비우스 원리도 적용의 방법이 문제였지만 한국에서처럼 필리핀에서도 그대로 먹혀들지 않는 고민을 많이 하였다. 이 선교부의 전략에 의거하여 새로 전도하고 하여 개척한 교회나 양육한 지도자가 아니다. 즉 이삭줍기를 통하여 얻은 지도자, 그리고 이 지도자들에 의하여 개척된 교회가 많다. 물론 이 지도자를 따로 훈련도 하고 안수하기도 하고, 지원하여서 생긴 교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예배당을 지어 주거나 아직도 교역자 생활비를 부담하는 선교정책은 실패의 씁쓸함을 지금도 맛보고 있다. 더구나 자신학화( (Self-Theologizing) 과정은 매우 미진하였다. 그 결과 필리핀 토양에 장로교회의 조직과 형태를 접목함에서 한국장로교회의 모습을 많이 닮아가고 있다.
  • 7
    장로교단 (합동, 통합, 고신, 기장, 대신, 개혁, 합동정통, 합동중앙, 합신 등), 감리교, 성결교(예성,기성), 하나님의 성회, 나사렛, 그리스도교회 등과, 바울 선교회, GP, 동남아, 삐나뚜보, 코필어린이, 임마누엘, 코람필, 코람데오, 아세아 연합 선교회 등등 다수의 전통적인 선교회와 토착 선교회가 있고, SIL, OMF 등의 국제 선교단체도 있다.
  • 8
    10여년동안 한인교회를 개척담임하고 있는 한 선교사는 150개 이상의 현지인 교회와 만 명에 육박하는 교세를 자랑하고 있다. 이 숫자는 몇 개의 장로교단선교부가 연합하여 30년간 사역한 교세와 맞먹는다.
  • 9
    Philippine Mission Movilizing Movement 의 약자로 2010년 까지 200,000명의 필리핀 선교사를 파송하겠다는 야심찬 비전이다.
  • 10
    Mission Frontiers (May-June, 2007, P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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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활영 원로선교사(장양백사모) -

1942년 12월 25일생, 장양백 사모와 1남2녀, 대구동신교회 1977년 필리핀 파송 선교사, GMS 초대사무총장, GMS 필리핀선교사, 필리핀 장로회신학교 초대학장, 필리핀 선교사자녀학교 초대교장 등 주요저서로는 그의 나라 그의 순례자/ 2018 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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