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교사 자녀 교육에 대한 발제 » 김활영 원로선교사 선교사 » 자녀 학교의 설립과 운영을 중심으로
목차
들어가는 말
現在 한국 선교사의 자녀는 5천명을 헤아리고, 이들중 대부분이 就學前 혹은 國民學校 年齡에 있다는 調査 結果가 있다.1이동 학교 敎師 宣敎會에서 調査한 結果를 주혜경 교수가 1994년 말에 마닐라에서 보고한 內容에 根據함. 필리핀만 하더라도 就學年齡에 있는 선교사 자녀들이 400명은 웃돌 것이란 推算을 하고 있다.2재비 선교사 가족은, 필리핀 주재 한국 선교 단체 협의회의 보고에는, 가입된 39개 선교 단체에 속한 선교사중 1995년도 요람에 기재된 256가정에 455명(199가정과 남자 독신 16명, 여자 독신 41명)의 선교사와 자녀들이 357명,총 812명이다.그러나 선교사 총수는 누락되거나 미가맹자를 합하면 1000명에 육박한다. 現地 大使館에 의하면 필리핀 駐在 한국 선교사 가족은 모두 1700명정도다. 이중에 700명 정도는 자녀들로 추산함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 統計는 向後 한국 교회 선교에 있어서 선교사 子女 敎育이 차지하는 比重이 어떠하리란 암시를 하기에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이들의 양육비, 특별히 교육에 소요되는 엄청난 경비와 인력을 이 숫자를 통해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점차 선교사들이 삶의 우선 순위를 하나님, 사역, 가족의 순위가 아니고 하나님, 가족, 사역 쪽으로 받아 드려지고 점을 감안한다던가, 선교사의 78%가 자녀 교육 문제로 사역지를 옮기거나 떠난다는 통계가 그 심각성을 넉넉히 뒷받침 하고도 남을 것이다.3Donald D. Boesel, 1990. p 295.
사실 한국 선교사 자녀의 교육에 대하여 宣敎的 側面에서 關心을 가져온 지는 오래 되었다. 1982년 한국 선교사 친교회가 그 첫 모임을 필리핀에서 가졌을 때부터 이문제가 가장 관심을 끈 이슈였다. 그후 이 시간에 모이는 제2차 민족과 세계 복음화 회의에 이르기까지, 여러차례의 宣敎 關係 모임이 있을 때마다 자녀 교육 문제가 重要한 토론課題로 등장하였음은 周知의 사실이다.4마닐라 모임 때만 해도 대부분의 선교사 자녀들은 어렸고, 의례히 歐美 선교사 자녀 학교에 보내어 敎育하고 있었으나, 이 이슈는 상당한 關心을 끌었고, 그후 宣敎 大會마다 연구 과제로 子女 敎育 問題가 빠진 적이 없었다. 또한 個人的으로나 團體的으로, 이 문제의 원만한 解決을 여러 모양으로 試圖하였지만5母國語 습득과 韓國人의 正體性을 위하여 방학 때에 歸國시켜 고국의 학교에 단기간 就學시키던가, 週末 학교, 방학 기간에 교사를 선교지에 파송하여 短期 한글 학교 開設, 移動 學校, 또는 선교지에 교사를 配屬시켜 한국 역사와 언어를 교육하는 등 여러 방법을 試圖하였다. 마닐라에서 1994년에 개교한 “한국 아카데미”만큼 획기적 轉機를 이룬 시도도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교육과 학교는 밀접한 相關關係에 있기 때문이다.
선교사 자녀 교육은 선교 사역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면서 광범하게 얽혀 있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 小考에서는 범위를 축소하여 자녀 교육의 核心的 器具인 學校, 그 중에서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가장 積極的이고도 效果的이라고 할 수 있는 宣敎師 子女 學校에 限定하여서 言及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본 발제의 目標는 한국 선교사 자녀 학교의 設立과 運營의 實際를 소개하고, 그 問題點을 지적하며, 그 解決方案을 提案하는데 있다.
그래서 본고에서, 먼저 서구 선교사들의 자녀 敎育 方案중에 선교사 자녀 학교의 歷史와 그 運營 실태를 잠깐 살펴보면서 敎訓을 삼으려고 하며, 다음으로 한국 교회 宣敎歷史에서 자녀 교육을 살펴보면서 마닐라의 한국 아카데미를 紹介하려고 한다. 이 학교의 設立 過程과 운영 실태를 살펴 본 다음, 운영상 문제점, 해결 방안 등을 宣敎學的 側面에서 고찰함으로 他선교지에도 자녀 학교를 設立하고 運營하는데 參考가 되고자 한다. 結論的으로 본 논의를 要約 정리한 후에, 이에 근거하여 한국 선교사 자녀 교육을 위하여, 특별히 자녀 학교6이하에서는 선교사 자녀 학교를 자녀 학교로 줄여서 사용함.의 설립과 운영을 위한 한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한다.
I. 서구 선교사 자녀 학교
선교에 앞장섰던 서구 교회의 선교사 자녀 교육은 어떠하였는가? 자녀 학교를 중심으로 간략한 歷史的 스켓취를 한 다음, 이 학교들의 運營 實態를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바울 선교 팀에 자녀가 끼어 있었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 베드로가 부인과 함께 선교 여행을 하였는데 만약 어린 자녀도 동행하였다 해도 당시의 교육제도로 미루어 봐서 그렇게 복잡한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8세기가 되기 전에는 사실 교육 제도 자체가 지금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어서 선교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았다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선교가 시작되면서 자녀 교육이 선교의 중심 문제중 하나로 등장하였다. 현대 宣敎史上 상징적 인물들인 윌리암 케리나 리빙스톤은 離散 家族이 되는 아픔을 선교의 제단에 바쳤다. 內地 宣敎란 선교의 새로운 한 章을 열었던 허드슨 테일러는 자녀 학교란 비전을 가졌던 첫 번째 선교사이기도하다. 그의 비전이 1881년 중국의 煙台에 최초의 선교사 자녀 학교 (Chefoo School)의 문을 열게 하였고, 이어서 북인도의 무수리(Woodstock School)와 한국땅 평양과 기타 여러 선교지마다 자녀를 위한 학교가 개교되기 시작한다.7Danielson (1984)과 Boesel (1990)을 참고하라.
이들 학교는 지금 우리 주변에 있은 자녀 학교들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예를 들면 수용 대상이 대부분은 初等 과정으로써 어린 자녀이었다. 中等 과정 이상의 성장한 자녀들은 本國의 寄宿 학교나 친지에게 보내어져 故國 學校에서 공부하는 것이 常例였다. 그런 형편이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급격히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즉 中高等학교 과정까지도 宣敎地의 자녀 학교에 설치하고 大學을 본국에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8 Danielson 1984, Missionary Kit-MK, 16 선교사 부모가 자녀를 더 오래 데리고 있게 된 것이다. 선교지와의 거리가 좁아지고 여러 면에서 사회가 발전된 결과이다. 지금은 보통 고등학교까지 선교지에 두고 있다.
그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현재 미국의 해외 주재 선교사가 4만 명에 이른다. 이들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가 130개 가까이 세계에 흩어져 있다. 발제자의 주변에서는 수명 혹은 수십 명으로 이루어진 이런 미국계 자녀 학교가 필요에 따라 시작하기도 하고 또 문을 닫기도 하는 것을 보고 있다. 1989년 보고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약 15,000명에 이르는 선교사 자녀들이 다양한 형태의 선교지에 있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특히 이 미국계 130개 자녀 학교가 이들을 교육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사실은 再論할 필요가 없다.91989년 11월 26일-12월 1일 사이에 Nairobi에 모였던 International Conference on Missionary Kids의 보고. 근래에 와서 2/3세계의 교회들이 세계 선교에 뛰어 들면서 서구의 자녀 학교가 부분적으로나마 2/3세계 선교사 자녀 교육도 도와주고 있다. 그러나 2/3 세게 교회 선교 지도자들은 이 문제를 深刻性을 호소하고 있는 時代가 되고 있다.10Donald D. Boesel. 1990. p. 292
그러면 이런 美國係 자녀 학교를 중심으로 서구 선교사들의 자녀 학교의 운영 실태를 살펴보자. 이 情報는 베테랑 기독교 교육가인 락커비(Bruce Lockerbie)가 1974년에 세계에 흩어진 자녀 학교를 두루 돌아보고, 자기의 교육 경험과 철학에 의하여 상세한 분석과 함께 개선을 위한 제안을 한 報告書와,11Education of Missionaries’ Children, 1975, Published by William Carey Library. 마닐라의 페이스 아카데미(Faith Academy)에서 얻은 자료에 의존하고 있음을 밝힌다.
먼저 저들의 교육 哲學을 살펴보자. 학교마다 敎育 目標가 약간씩 다르고 강조 점이 상이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基督敎 敎育을 강조한다던가 모국의 문화와 자기의 正體性 확립이란 기본 목표는 동일하다. 락커비가 방문했던 15개의 비교적 큰 규모의 학교.12Christian Academy in Japan (Grades 1-12), Osaka Christian School (1-6), Morrison Academy (1-12) in Taiwan, Bethany Christian School (1-8) in Taiwan, Hong Kong Christian School (1-12), Master’s School (1-3) in Thailand, Dalat School (1-12) in Malaysia, Chittagong Christian School (1-6) in Bangladesh, Hebron Christian School (1) in Bangladesh, Malumghat Christian School (1-8) in Bangladesh, Woodstock Academy (1-12) in India, Kodaikanal School (1-12) in India, Rift Valley Academy (1-12) in Kenya, Bingham Academy (1-10) and Good Shepherd School (1-12) in Ethiopia.를 위시하여 福音主義적인 선교부들이 운영하는 학교는 전통적인 기독교 교육에 강조 점을 두고 있음을 상론할 필요가 없다. 소규모 학교일수록 고집스레 자기가 자기 자녀를 말씀 데로 가르치겠다는 집념, 世俗化된 교육제도에서 자녀를 보호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어떤 학교는 성경 과목 같은데서 교리적인 색채가 짙을 수 있을 때는 아버지가 집에서 가르친 성경 과목을 그대로 인정하여 줄 때도 있다. 페이스 아카데미를 위시하여 대부분의 미국계 학교는 이런 일반적인 기독교 교육의 강조와 함께 미국 시민으로써 미국 大學에 진학 준비를 하는 人文係 학교들이다. 마지막 고등학교 4년 敎科 課程이 특히 그러하다.
다음으로 학교 운영 形態를 살펴보자. 먼저 운영자가 4부류로 나누어 진 것을 볼 수 있다.13자세한 것은 Lockerbie, 1975, 6-12를 참조하라. 첫째로 個 선교사가 꿈을 가지고 운영하는 학교다. 주변에서 주로 小規模의 학교가 이런 형태인 것을 볼 수 있었고, 어떤 때는 家庭 學校 (Home School)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두 번째로 한 개의 선교 團體가 운영자인 경우다. AIM, SIM, ABWE, CMA등의 선교부들이 대규모의 학교까지도14AIM 단독으로 운영하는 Rift Valley Academy는 학생 500명, 직원이 100명이나 되고 여러 선교 단체에서 학생을 보낸다.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세 번째로는 여러 선교부가 共同 운영자가 되는 경우다. 대부분의 교파 선교부들은 타 선교부들과 연합하여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마지막 형태는 독립된 이사회를 주로 학부형들이나 개인들로 구성하여 운영한다. 이밖에도 선교부가 직접 학교 운영에는 참여하지 않으나 자녀들을 보낼 때에 특별한 관계를 정립하여 間接으로 운영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운영 형태에 따라 결과적으로 학교 組織이 전형적인 서구식 理事會를 구성 하던지, 선교부 자체가 이사회 기능을 가지던지 하여 학교장을 선출한다. 學校長은 교육의 모든 책임을 지는 형식으로 짜여져 있었다. 어떤 학교의 책임자는 기본 교육 資源인 敎師와 財源 개발이 주임무 중의 하나로써 분주히 뛰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敎職員의 구성도 몇 가지 방법으로 달리하고 있었다. 마닐라의 페이스처럼 전적으로 선교사에 의존하던지, 臺中의 모리슨처럼 얼마는 선교사이고 어느 부분은 비선교사 중에서 採用된 교사이던가, 또는 선교사와는 상관없이 일정한 기준을 세워 놓고 공개 모집한 교사로 구성된 학교도 있어서 우리에게 示唆하는 바가 많았다. 선교사 중심의 학교에서 교직원 관계의 용어 또한 눈에 띄는 특징이었다. 교사(Faculty)와 일반 직원 (Staff) 그리고 기숙 부모(Dorm Parents)등이 일반 학교처럼 구별되기보다 동료 선교사란 관점에서 이들 모두가 職員 (Staff)으로 호칭되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이 잘 준비되었을 뿐아니라 헌신적이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허지만 다수의 학교들이 敎師難을 겪고 있었다.
대부분의 학교는 소위 寄宿 學校였다. 부모들이 선교사로서 여기 저기 흩어져 사역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주된 이유이지만 전통적으로 歐美에서 대개 기숙 학교가 名門이 많은데도 연유가 있을 것이다. 마닐라의 페이스 같은 곳은 중학생(5학년)부터 기숙사에 받지만, 나이로비의 리프트 발리 같은데서 는 1학년 학생까지 기숙사에 수용이 된다. 대부분의 선교부들은 학교 구내나 주변에 자기 선교부 기숙사를 확보하고 寄宿 父母(Dorm or House Parents)를 파견하여 자기 선교부 자녀들을 돌본다. 이런 경우는 학생 수용에 伸縮性이 크며, 선교 인력및 재정 사용에 있어서 매우 경제적이며, 또한 효과적이라고 분석이 된다. 그러나 점차 선교사들이 자녀를 데리고 있고 싶어하는 경향이 짙어 가고 있는 현실에서 고민하고 있는 모습도 역력히 볼 수 있었다.15Donald D. Boesel “MK Education”, 1990. p. 294
다음으로, 학교 시설과 운영을 위한 財源面에서는 대략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었다. 선교 단체가 상당한 부분을 담당하는 학교이거나, 학부형에게 부담이 주로 가는 형태다. 보통 시작 할 때는 소규모로 시작하게 되고 선교 단체 던지 관계된 개인 혹은 학부형이 기본 시설을 담당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시설 투자 등도 학부형인 선교사들에게서나 개별 모금에 의존하는 것을 볼 수있었다. 그러나 일반 운영비는 대개 학생의 학비를 통하여 충당하고 있다. 어느 쪽이던지, 선교 단체가 잘 조직되어 있는 서구 선교 구조상, 실제적으로 학부형 개인이 직접 부담한다기보다 선교단체를 통하여 자녀 교육비가 지출되는 형태다. 이런 측면에서 개 선교사 중심인 한국 교회의 선교 구조적 현실은 財源 개발면에서 서구 교회와는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게 하였다.
다음으로, 學生들은 물론 대부분이 선교사 자녀들이다. 몇 학교는 아예 선교사 자녀만 받는다. 오래된 몇 학교는 선교사 자녀 학교로 시작 하였으나 國際的인 학교가 되어 여러 나라와 여러 종류의 학생을 받고 있다. 페이스 아카데미 같은데는 비 선교사 자녀를 15% 이내로 제한하고 또한 학비도 선교사 자녀의 2-3배를 더 받는다.
다음으로, 커리큘럼을 살펴보자. 소규모의 학교는 학급을 나누지 않은 소위 複式 授業을 하고 있었으나 대부분은 계획된 학과 과정에 따라 학급이 나누어저 있었고, 중고등 과정의 학급까지 있었다. 거의가 미국계 학교이므로 전형적인 미국식 커리큐럼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은 피할수 없는 사안일 것이다. 선교지에 위치한 학교들이니 만큼, 현지의 문화를 커리큘럼에 반영하려고 노력한 흔적 역시 많았다. 그리나 大學에 진학하여 專攻 분야를 공부 할 수 있도록 하는 基礎 課程, 즉 人文 학교과정인 것도 특색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보고는 다수의 학교들이 성경 교육이 脆弱 분야이며, 예배와 전도, 혹은 봉사를 위한 커리큐럼도 미약하다는 보고를 락커비(Lockerbie)는 하고 있다. 보통 미국계 학교에서 중시하는 운동 경기나 스포츠에 대하여서 까지 일반적으로 시설, 지도자 부족등의 이유로 일반 학교에 뒤떨어지고 있음도 또한 보고하고있다.
락커비는 보고를 맺으면서 결론으로 한 선교사의 告白을 인용하여 자녀 교육의 중요성을 환기 시키고 있다. 즉 “나는 선교사로 召命 받기전에 남편과 아버지로 부름을 받았다. 내게는 이보더 더 높은 召命은 없다.“ 고 선교 使役 책임 이전에 家庭的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락커비는 선교 단체 책임자와 자녀 학교 당국자들, 그리고 선교사들에게 아래 사항들을 고려 할 것을 권하고있다. 먼저는 기독교 학교의 교육 哲學과 커리큐럼에 따르는 구체적인 目標를 條文化하여 이대로 실천 할 것과, 硏究會議나 訪問등을 통하여 학교끼리 긴밀한 關係를 수립할것, 중심된곳에서 敎師들을 위한 연구나 웤샾 프로그램을 개발할것, 선교 단체들이 더 활발하게 학교 관계를 弘報할것, 偏狹한 미국식 교육이 아닌 국제적인 교육이 되도록 커리큐럼의 여러분야를 再考할것과 특히 聖經 교육에 새로운 주목을 할것등을 열거하고 있다.16Lockerbie, 1975, pp 55-56. 여기서 서구 선교사들 역시 세기를 두고 경험하여 왔으면서도 자녀 학교 운영에 어려움을 많이 안고있음을 露呈하고있다. 허지만 선교사의 자녀 교육에 있어서, 자녀 학교가 主種을 이루는 效果的인 방안임을 또한 확실히 보여 주고 있기도 하다. 서구 선교사, 특히 미국 선교사들은 자기 文化의 독특성 때문에 유리한 입장에 있는데도 위와 같은 고민을 하고있다는 事實과, 또 저들이 운영하는 子女 學校를 통하여도 우리가 배워야 할 바가 많을 것이다.
II. 한국 선교사의 자녀 교육
한국 교회의 본격적인 超文化 선교는 장로교단의 中國 선교로 시작한다. 朝鮮 예수교 長老會 總會 조직의 감격을 안고 감사의 예물로 이방 땅에 선교사를 보내자고 결정하였던 때가 1912년이었다. 그 이듬해 3인의 선교사 가족을 孔子의 고향인 山東省에 파송한다. 1919년 1월에 산동 선교회는 宣敎師 兒童 學校를 倂設하여, 부임 2년째로 언어 훈련 중인 朴尙純 선교사를 교장에, 그리고 김윤식 의사 선교사의 부인 朴喜福을 敎員으로 任命하였다. 1922년에는 대구의 신명 학교에서 졸업생 趙素任을, 1924년에는 평양 숭의 학교에서 졸업생 李英愛를 산동에 파송하여 최초의 선교사 자녀 학교의 교사로 봉사하게 하였다. 이들은 한국 최초의 자녀 학교를 세웠고, 敎師 宣敎師가 된 분들이었다. 또 총회 선교부는 산동에 자녀 학교를 세울 뿐 아니라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 현황을 상세하게 총회록에 기록할 정도로 자녀 교육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17장로교회 총회록과 Kim Hwal-young. 1994. From Asia To Asia PP 45-50 참조하라. 한국 교회의 초기 해외 선교는 팀 선교와 일관성 있는 행정 체제 아래 빈틈없는 선교 사역을 전개하기도 하였지만 자녀 교육에서도 용이 주도한 정책을 세워 실천한 모범적인 선교였다.
해방후 ‘50년대 중반, 泰國에서 계승된 선교에서부터 한국 선교사끼리의 팀이 아닌 서구 선교사와 동역하면서 자녀 교육도 서구 선교사 子女 學校에 맡기는 식이 되었다. 그 결과 자녀들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대개 美國化 되었거나, 부모들 역시 자녀 교육 문제로 선교지를 떠나 미국에 定着한 예가 적지 않다. 초대 선교사 자녀들이 지금쯤은 부모를 이어 第二世 선교사로 봉사할 나이가 되었다. 허지만 대부분 자녀들이 우리말을 할 수 없는 정도였으니 기대하기 어려운 現實이다.
이런 현상은 지금까지도 대체로 繼續되고 있다. ‘70 년대에 파송 되었던 선교사들은 선배들에 비하여 사역 여건이 많이 달라젔다. 그래도 자녀 교육만은 주로 미국계 자녀 학교밖에는 依託할 곳이 없는 형편이었다. 그 결과 이들의 자녀들 거의 모두가 選擇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미국 대학으로 진학하여 공부하고 있다. 자녀들의 학비 조달과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에 적지않은 선교사들이 미국 永住權을 얻으려 노력하고 있다.
‘80년대가 되면서 한국 교회의 선교 상황은 急變하였다. 우선 數的으로 급증한 선교사와 그 자녀들, 그리고 점차 선교비 중에서 자녀 교육비가 차지하는 比重이 커저갈뿐 아니라, 여러면으로 선교 사역에 엄청난 影響을 미치고 있는 자녀 교육문제에 注目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선교사들은 선배들의 자녀를 바라 보면서 한국인의 正體性 확립을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기도 하고, 근본적인 해결점을 모색하기 시작하였고, 교회와 선교 지도자들 역시 역시 팔을 걷고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선교 관계 모임이 있을 때마다 이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 결과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나오기도 하고 다양한 기관들도 탄생되었다. 갖가지 방안들을 시도하여 보았다. 그러나 산동에서 처럼 자녀 학교를 세우는 과감한 시도는 ’80년대 말까지도 해보지 못하고 만다. 자녀들의 학교 교육은 서구 선교사 자녀 학교 依託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最多數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필리핀에서 예를 보자. 페이스 아카데미에 ‘80년대 초에 한국 선교사 자녀가 단 한명 뿐이었다. ’80년대 말에는 캐나다를 제치고 미국 다음으로 단연 한국 학생이 多數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90년대에 들어오면서 별도의 對策이 없는 한 한국 선교사 자녀들을 더 이상 받아 줄 한계를 넘은 것을 깨닫고 한국 선교사 자녀들에게 문을 닫게 된다.18한 언어 군에서 한 학년당 2명 이내로 학생 수를 제한하였다. 처음에는 영어 교육을 시켜서까지 한국 선교사 자녀들을 도와 왔으나, 지금은 영어가 완전할 정도로 준비된 학생만, 그것도 숫자를 제한하여 받으므로 실제적으로는 한국 선교사에게 문을 닫은 것과 마찬가지다. 이 때까지 在比 선교사들이 여러 번 자녀 학교 설립의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그 시작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닐라에 자녀 학교 설립이 시도 된것은 역사적 의미가 자못 크다 할 것이다. 이 학교에 대하여는 다음장에서 별도로 고찰하려고 한다.
이때까지 제안된 한국 선교사의 자녀 교육 方案들을 살펴보면, 通信 교육, 家庭 學校, 現地人 학교, 현지의 外國人 학교, 현지의 선교사 子女 學校, 故國의 학교, 고국의 선교사 자녀를 위한 寄宿舍 시설 혹은 專門的인 선교사 자녀 학교 등이었고, 그 長短點이나 실현 可能性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였다. 그 외에도 한국인의 正體性 확립을 위하여 巡廻 교사, 放學中 故國 학교에 수학, 한국 비데오 보내기 운동, 자녀 켐프 등의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19 1993년 11월에 모였던 한국 세계 선교 협의회가 주관한 제 1회 한국 선교사 자녀 교육 정책 협의회와 기타 여러 번 모였던 각종 선교 대회에서 제안된 방안들이다.
현재 한국 선교사 자녀들의 취학 形便을 살펴보면, 현지에서 주로 외국인 학교 (International School), 서구 선교사 자녀 학교, 현지 학교 (National School)에 보낸다. 몇 선교지는 한국 僑民 학교가 있어서 한국 학교에 보낼 수 있는 特權을 누리지만, 이런 祝福된 경우는 숫자도 적고 대부분이 국민학교 과정이다.20우리 나라 전체 국민의 1/8이 해외에서 살고 있다. 在外 國民의 수가 1980년에 147만에 불과하였으나, 1992년에는 494만으로 증가하였다. 이들의 자녀들을 위하여 정부는 14개국에 20개 정도의 정규 학교(주로 국민학교 과정으로 교사 306명, 학생 3,783명)를 세워 民族 敎育에 노력하고 있다. 그 외에 21개국에 흩어진 4,105개의 한글 학교(週末 학교)에서 한국인의 정체성 확립을 위하여 교민회나 교포 교회에서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학교중 正規 학교는 일본에, 週末 한글 학교는 미국에 偏在하여 있어서 실제로 선교사 자녀들에게는 별로 惠澤이 가지 않는다. 또 교민 학교가 偏在되어 있는 일본에서는 선교사들이 僑民 학교 보다 현지 학교나 외국인 학교를 選擇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선교사 자녀 교육의 현실은 자기의 정체성을 키워 줄 교육을 받거나, 전문 과정에서 故國 大學에 진학할 수 있도록 교육받고 있는 자녀들은 극히 小數에 불과한 사실이다. 多數의 자녀들은 선택의 여유가 없는 형편에 놓여 苦悶하고 있다.
III. 한국 아카데미
필리핀은 ‘80년대가 시작되면서 多數의 한국 長老敎 선교사들이 팀을 이루고 사역을 시작한 곳이다. 이들은 山東 선교의 모델을 따라 여러 면에서 先驅的 사역을 하여 왔다. 자녀들이 취학 연령에 이르자 페이스 아카데미의 권고와, 한국 대학생 선교회의 이해와 참여로 용기를 얻어서, 자녀 학교 시작까지 시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試圖는 그후 10년이 지나도록 成事되지못하였다.
1993년 8월에는 이상 더 지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재비 한국 선교 團體 協議會가 몇 명의 準備 위원을 위촉하므로 한국 아카데미는 개교의 서막을 올리기 시작했다. 준비 위원들의 기초 작업으로 학교 設立 準備 理事會가 17개 선교 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조직되어 개교 준비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들이 모국 선교 本部에 호소를 하고 한국 세계 선교 협의회에서도 적극 나서서 후원함으로, 그해 12월에는 한국에 理事會가 조직되고 6개의 교단 선교부와 5개의 선교 단체가 이에 가입하고 학교 설립 지원에 앞장을 섰다. 敎師 선교회, 敎育者 선교회 같은 기존 선교 단체에서 발빠른 반응을 보여 헌신된 교사 선교사를 공급하였다. 1994년 6월 15일에는 17명의 敎師 宣敎師들과 77명의 선교사 자녀들이 학생이 되어 국민 학교 과정까지 개교를 할 수 있었다. 1995학년도에는 더많은 교사가 지원 중에 있고 중학교 과정까지 시작할 계획인데 현재 등록 학생은 100명을 넘어서고 있다.
학교의 設立 理念을 “선교사 자녀들이 한국인의 얼과 정체성을 가지고 한국 교회의 좋은 신앙을 물려받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하며, 국제적 감각을 갖도록 하여 장차 성장하여 살게 된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도록 교육하는데” 두었다. 이에 따른 基督人, 韓國人, 國際人이란 목표를 구체적인 교육 課程에 반영하여 성경을 主 敎材로 하고, 한국어와 동시에 영어로 교수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校牧을 중심으로한 성경 교육과 예배, 수련회, 발표회등 신앙과 인격 교육에 역점을 두었다. 國民 敎科와 國際 敎科로 나누어서, 국민 교과는 우리 말로 本國 교과서 중심으로, 국제 교과는 미국계 기독교 학교의 교과서를 영어로 가르치는 방법으로 교육과정을 짰다. 예체능과 기술 계통은 特別 活動 시간을 활용하도록 하였다. 국민 학교 4학년을 예로 들면 한국의 표준 수업 시간의 109%에 해당되는 시간을 배정하여 공부를 더시키는 쪽으로 하고 한국의 과외 수업같은 데서는 해방시켰다. 이런 한해 동안의 敎授 경험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견되었고, 교육 목표 달성을 위한 교과 과정과 교재를 준비하는데 많은 도전을 받고있는 것도 사실이다. 금년은 중학교 과정까지 학생을 받으려고 하는데 더 많은 문제들이 발견될 것을 예상은 하고 있다.
학교의 敎育 環境을 보면 고무적이다. 급히 서둘렀기 때문에 교사는 임대한 주택을 개조하여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였다. 일반 학습은 물론이고 예체능 계를 위한 넉넉한 교재 교구가 준비되었다. 학급당 평균 학생 수가 10명 내외이기 때문에 언어 배경이 다른 학생들일지라도 개인 지도가 가능하여 별 어려움이 없었다. 물론 넓은 운동장이 없는 것은 흠이지만 사실 더운 나라에서는 운동장 시설을 달리하여야 한다. 어디까지나 이 것은 임시 시설이다.
학교 조직을 살펴보자. 처음에는 한 선교 단체에다 맡기느냐, 아니면 학부모들로 이사회를 구성하느냐, 여러 선교 단체들로 조직하느냐로 의논이 분분하였다. 결국은 선교 단체별로 참여하게 하자는 쪽으로 기울어져서 모국 선교 본부들에 요청을 하였다. 본부들은 좋은 반응을 보이고 솔선하여 이사회를 조직하여 적극 지원하여 왔다. 현재 3개의 교단이 더 참여하여 9개의 교단 선교부와 5개의 초교파 선교 단체가 지원 본부가 된 셈이다. 그리고 가입은 하지 않아도 지원을 약속한 몇 개의 단체들이 지원을 하여 오고 있다. 이 지원은 人的 財政的 支援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적인 학교 조직과 운영은 현지 운영 이사회가 담당하였다. 이 운영 이사회는 학교 지원에 가맹한 현지의 교단 선교부나 선교 단체에서 파송하는 이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좀더 구체적인 運營 면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人事 문제가 운영의 첫째가는 어려운 일이었다. 어떻게 교사 선교사를 發掘하여 일하게 하는가 였다. 처음에는 한 두 교단 선교부에서만 교사 선교사를 파송해 왔으나 차츰 참여 선교부마다 이 방면에 힘써서 교사를 발굴하여 가고 있다. 다음으로 財政 관계다. 아직까지는 재정적 어려움은 없는 형편이다. 이사회를 비롯하여 각종 기관이나 개인들이 헌금을 하여서 시설과 운영비의 80% 이상을 부담하고, 학부형은 전체 결산의 20%가 훨씬 못되는 분량만 담당하였다. 한국에서 지원을 하고 있는 가맹 단체에 속한 학생들은 학비 중에서 일부를 감면하기도 하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은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하였다. 학생중 10% 미만이긴 하지만 非宣敎師 자녀도 받아서 교육을 하였다. 학부형들이나 선교사 혹은 일반 교민들까지도 學事에 참여할 수 있도록 門戶도 개방하여 두기도 하였다.
설립과 운영 과정에서 발견된 문제점 몇 가지를 참고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학부모 즉 선교사들의 자기 자녀 교육에 대한 철학의 빈곤이다. 증거로 절대 다수의 재비 선교사들이 자녀 학교의 必要性을 심각히 느끼지 않는다. 또 一流 敎育에의 집념은 강하나 일류 교육에 대한 定意가 분명치 않다. 運營 理事들이 미처 임무를 파악도 못한 체 자주 交替되고, 선교부의 뒷 바침이 부족하여 책임지고 중요한 결정을 하지 못할 때가 너무 많다.
한 例로 학교의 所在地를 어디다 두느냐, 즉 寄宿 학교로 할 것이냐, 아니면 마닐라 시내의 通學학교로 하느냐는 학교의 方向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도 개학 2년을 맞이하는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음으로 교직원들 역시 여러 면에서 새로운 환경에 빨리 適應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유는 교사들이 선교사로써의 訓練이 없이 부임한 이유도 있다. 이런 학교는 모두에게 처음이기에 제도나 조직을 미리 연구하여 짜 주고 거기에 적응하도록 準備 시키는 機會가 없었기 때문이리다. 이런 준비는 몇 사람이 책상 머리에 앉아서 할 일은 아니고 專門家들의 상당한 投資와 연구를 필요로 하는 과제임에 분명하다. 이 학교는 비교적 인적 자원이 빨리 동원된 셈이지만 한국 교회의 個敎會主義 宣敎 構造와, 個宣敎師 中心 선교 使役은 高度의 聯合 使役인 자녀 학교 운영에 어려움을 가저오고 있다. 특별히 人的資源 供給에 非效果的이다. 예를들면 시급한 문제는 寄宿舍 운영인데 施設이 없기 때문이 아니고 寄宿 父母로 지원하는 선교사가 아직 없어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시골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아이들을 맡길 방도가 없어서 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결과로 어떤 선교사들은 보따리를 싸서 시골에서 마닐라로 逆移住하는 현상까지 생긴다. 이밖에도 교육 과정 이라던가, 그 실제 적용에 있어서 隘路와 문제들에 當面하고 있다. 그런 문제들을 여기서 일일이 例據 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다만 문제가 많다는 점과 이런 문제는 宣敎 專門家, 敎育 專門家, 敎會 指導者들이 한 자리에서 머리를 맞대고 祈禱하며 硏究해야 할 課題임을 强調하고 싶을 뿐이다.
어쨌던 한국 아카데미는 한국 선교사 자녀 교육에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學校가 敎育의 確實하고 效果的인 한 方案이라면, 선교사 자녀 교육을 위하여도 子女 學校처럼 確實하고 效果的인 方法이 또 어디 있겟는가?.
맺는 말
허드슨 테일러 이후 선교사 子女 學校는 세계 복음화의 한 몫을 담당하여 오고 있다. 부모 선교사가 안정된 가운데 效果的으로 선교 임무를 수행하게 도와 왔다. 많은 인적, 물적인 선교 자원을 節約 시켜 온 기관이다. 훌륭한 二世 선교사 養成所로 한 몫을 단단히 하여 오고 있기도 하다. 선교사들을 한데 묶어서 한 주님의, 같은 지상 명령을, 함께 수행하도록 묶어 주는 끈이 되어 오고 있기도 하다. 중국의 산동에서, 그리고 필리핀 마닐에서 시작된 자녀 학교도 韓國 宣敎에서 하나의 선명한 里程標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이제는 선교사 자녀 교육에서 이 里程標에 맞추어 한국 교회의 선교 旅程을 재조정해야 할 때이다. 이 이정표를 더 細分化하여 누구나 쉽게 읽고 따라 가도록 하여야 한다.
한국 아카데미 탄생의 直接的인 動機는 어쩔 수 없었던 狀況이었다. 그간 자녀 교육 문제로 놓고 수없이 모여 왔던 선교 대회나 회의의 직접적 결과는 아니다. 그래서 풀어야 할 宿題도 많고 넘어 가야 할 고개도 수없이 가로놓여 있음을 창설 교장직을 맡았던 사람으로써 告白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선교지에서도 자녀 학교 설립을 권해야 하겠는데 實際的인 면에서 自信이 없다. 즉 어떻게 하면 施行錯誤를 줄일 수 있겠는가? 이렇게 여러 사람이, 자주 모여서 회의를 하는 것도 많은 참고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決定的인 具體案을 내어놓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발제자는 이 시간을 빌어 엄청난 시간과 자원의 浪費를 막을 수 있는 한가지 방안을 提示 하려고 한다. 이 방안은 세상의 정부 기관이나, 사업가나 학술 단체나, 심지어 장사하는 사람까지 다 사용하고 있는 방안이다. 무엇보다 주님께서 가르치신 성경적인 방안 (눅 14: 28 -33)이다. 이것은 바로 전문가들로 구성된 연구팀을 구성하자는 것이다. 이 연구팀으로 하여금 학교 설립과 운영에 관하여 연구하고 보고하게 (Research Report) 하자는 것이다. 한국 선교사 자녀 교육과 특별히 자녀 학교 설립과 운영을 위하여 단편적이거나 추상적인 제안이 아닌,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표준 자료집을 보고서로 내어놓게 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방안들을 제시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선교지에서든, 누구던지 자녀 학교를 시작하려고 할 때에 敎範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제는 非專門家들의 百家爭鳴式 책임지지 못하는 소리가 아니라 專門家의 責任지는 案內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 제안을 좀더 구체적으로 하면 다음과 같다.
주관자: 한국세계선교협의회(만약 한국 세계 선교 협의회가 자신이 없으면 어떤 개인이나 단체에게 맡기고 협조한다. 개인이나 어느 단체가 맡더라도 전 교회적인 공인과 지원이 필요하다)
연구팀명: 선교사 자녀 학교 조사 연구 위원회(Research Commission on the Korean MK School)
연구위원 :
제1안: 베테랑 선교사와 교육가, 그리고 교회 지도자로 10명 정도의 위원을 두고 그중에 2-3명을 상임 연구원으로 전임 연구 조사하게 한다.
제2안: 베테랑 선교사와 교육가 2명으로 연구위원으로 한다.
연구기간: 적어도 6개월 동안 전임 사역.(금년 중에는 시작하여 즉시 결과가 나오도록 하자)
연구이유: 단편적인 지식이나 자료로는 시행 착오와 시간과 자원의 낭비를 막을 수 없다.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정보와 자료로 안내를 받으면 자녀 학교 설립과 운영에 굉장한 절약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자료는 한국 교회에 공급되어야 하고, 이런 자료를 위하여 응당히 투자를 하여야 한다. 세상 학교를 위하여 수천 페이지의 교육법전이 있어서 상세한 안내를 하고 있는 것이 무척 부러웠다.
연구목표: 종합 연구 보고서 제출 (자녀 학교의 설립과 운영을 위한 구체적이며 실용적인 방안을 포함하여야 한다. 즉 교육 철학을 위시하여, 조직, 운영 방안, 커리큐럼등 모든 분야를 망라해야 하며, 다양한 방안도 제시하여야 한다. 아주 세부적이고 실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문서 양식과 종류까지도 제시한다)
연구방법: 연구 위원들이 결정을 해야 하나, 선교지 답사, 전문가들 중심의 세미나, 설문 조사등 여러 가지 방법을 고려하여야 한다.
연구경비: 선교지 답사, 자녀 학교 방문, 회의, 세미나, 자료 구입, 사례 등에 소요되는 경비.(대략 1-2억원으로 잡아 보자. 이 액수는 나중에 수십억원을 절약하게 될 것이다.)
경비염출: 독지가 헌금, 선교 단체 헌금, 혹은 개인이나 단체가 전담.(선교사인 연구 위원은 사례가 필요하지 않고 은퇴한 교육가가 자원하는 경우에도 사례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참고문헌
Boesel, Donald d. 1990. “MK Education” World Mission: Asian Challenge. ed. by Met Castillo, Manila: OMF
Collins. Marjorie A. 1986. Manual For Today’s Missionary. Pasadena: William Carey Library.
Danielson, 1984. Edward E. Missionary Kid-MK. Pasadena: William Carey Library.
Kenney, Betty Jo. 1983. The Missionary Family. Pasadena: William Carey Library.
Kim, Hwal-young. 1994. From Asia To Asia. Manila: Presbyterian Church of the Philippines.
Lockerbie, Bruce. 1975. Education of Missionaries’ Children: The Neglected Dimension of World Mission. Pasadena: William Carey Library.
교육법전 편찬회 편. 1994. ‘94년 교육 법전. 서울: 교학사.
문상철. 1994. “한국 선교사 현황보고 (1994년)” 한국 선교 핸드북. 서울: 한국 선교 정보 연 구소
유부웅. 1993. “선교사의 자녀 교육” 490-504, 한국 교회 선교의 비전과 협력. 한국세계선교협의회 편. 서울: 횃불
1995년 5월 서울에서 모인 NCOWE (National Consultastion of World Evangelization)에서 발제
각주
- 1이동 학교 敎師 宣敎會에서 調査한 結果를 주혜경 교수가 1994년 말에 마닐라에서 보고한 內容에 根據함.
- 2재비 선교사 가족은, 필리핀 주재 한국 선교 단체 협의회의 보고에는, 가입된 39개 선교 단체에 속한 선교사중 1995년도 요람에 기재된 256가정에 455명(199가정과 남자 독신 16명, 여자 독신 41명)의 선교사와 자녀들이 357명,총 812명이다.그러나 선교사 총수는 누락되거나 미가맹자를 합하면 1000명에 육박한다. 現地 大使館에 의하면 필리핀 駐在 한국 선교사 가족은 모두 1700명정도다. 이중에 700명 정도는 자녀들로 추산함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 3Donald D. Boesel, 1990. p 295.
- 4마닐라 모임 때만 해도 대부분의 선교사 자녀들은 어렸고, 의례히 歐美 선교사 자녀 학교에 보내어 敎育하고 있었으나, 이 이슈는 상당한 關心을 끌었고, 그후 宣敎 大會마다 연구 과제로 子女 敎育 問題가 빠진 적이 없었다.
- 5母國語 습득과 韓國人의 正體性을 위하여 방학 때에 歸國시켜 고국의 학교에 단기간 就學시키던가, 週末 학교, 방학 기간에 교사를 선교지에 파송하여 短期 한글 학교 開設, 移動 學校, 또는 선교지에 교사를 配屬시켜 한국 역사와 언어를 교육하는 등 여러 방법을 試圖하였다.
- 6이하에서는 선교사 자녀 학교를 자녀 학교로 줄여서 사용함.
- 7Danielson (1984)과 Boesel (1990)을 참고하라.
- 8Danielson 1984, Missionary Kit-MK, 16
- 91989년 11월 26일-12월 1일 사이에 Nairobi에 모였던 International Conference on Missionary Kids의 보고.
- 10Donald D. Boesel. 1990. p. 292
- 11Education of Missionaries’ Children, 1975, Published by William Carey Library.
- 12Christian Academy in Japan (Grades 1-12), Osaka Christian School (1-6), Morrison Academy (1-12) in Taiwan, Bethany Christian School (1-8) in Taiwan, Hong Kong Christian School (1-12), Master’s School (1-3) in Thailand, Dalat School (1-12) in Malaysia, Chittagong Christian School (1-6) in Bangladesh, Hebron Christian School (1) in Bangladesh, Malumghat Christian School (1-8) in Bangladesh, Woodstock Academy (1-12) in India, Kodaikanal School (1-12) in India, Rift Valley Academy (1-12) in Kenya, Bingham Academy (1-10) and Good Shepherd School (1-12) in Ethiopia.
- 13자세한 것은 Lockerbie, 1975, 6-12를 참조하라.
- 14AIM 단독으로 운영하는 Rift Valley Academy는 학생 500명, 직원이 100명이나 되고 여러 선교 단체에서 학생을 보낸다.
- 15Donald D. Boesel “MK Education”, 1990. p. 294
- 16Lockerbie, 1975, pp 55-56.
- 17장로교회 총회록과 Kim Hwal-young. 1994. From Asia To Asia PP 45-50 참조하라.
- 18한 언어 군에서 한 학년당 2명 이내로 학생 수를 제한하였다. 처음에는 영어 교육을 시켜서까지 한국 선교사 자녀들을 도와 왔으나, 지금은 영어가 완전할 정도로 준비된 학생만, 그것도 숫자를 제한하여 받으므로 실제적으로는 한국 선교사에게 문을 닫은 것과 마찬가지다.
- 191993년 11월에 모였던 한국 세계 선교 협의회가 주관한 제 1회 한국 선교사 자녀 교육 정책 협의회와 기타 여러 번 모였던 각종 선교 대회에서 제안된 방안들이다.
- 20우리 나라 전체 국민의 1/8이 해외에서 살고 있다. 在外 國民의 수가 1980년에 147만에 불과하였으나, 1992년에는 494만으로 증가하였다. 이들의 자녀들을 위하여 정부는 14개국에 20개 정도의 정규 학교(주로 국민학교 과정으로 교사 306명, 학생 3,783명)를 세워 民族 敎育에 노력하고 있다. 그 외에 21개국에 흩어진 4,105개의 한글 학교(週末 학교)에서 한국인의 정체성 확립을 위하여 교민회나 교포 교회에서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학교중 正規 학교는 일본에, 週末 한글 학교는 미국에 偏在하여 있어서 실제로 선교사 자녀들에게는 별로 惠澤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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