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교사들의 현장에서 협력의 방향과 가능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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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교사들의 현장에서 협력의 방향과 가능성들

1995년 11월 3일/ 태국 좀티엔에서 모였던 한국 선교사 지도력 개발 대회의 발제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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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교사들의 현장에서 협력의 방향과 가능성들 » 김활영 원로선교사

들어가는 말

누가 韓國人을 모래알에 비유하였다.  모래알 하나 하나를 두고 보면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러나 두 알도 함께 뭉칠 수는 없다.  한국 선교사들은 개인적으로는 우수한 선교사들이나 팀 사역에는 약하다고 평하기도 한다.  사실 韓國人인들의 선교 현장은 협력과 동역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하모니보다는 분열과 싸움으로 시끄러운  소리를 감출 수 없기도 하다.  모래알 같은  韓國人 선교사들 스스로는 협력이 불가능할 것이다.  모래알들 끼리 만으론 절대로 함께 뭉쳐질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모래알들에다 물과 시멘트 가루를 함께 섞어 놓을 수만 있으면 깨뜨리기 어려울 정도로 단단히 서로 엉켜진다.  한국인 선교사들도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얼마든지 함께 협력할 수 있다.  이 사실은 선교 현장 사역에서 역사적으로도 증명되어 오고 있다.  그래서 한국 선교사들도 현장에서 협력이 가능하다는 前提에서, 오늘과 내일의 우리의 선교 현장에서 더 효과적인 “協力의 方向”을 모색하여 보려고 한다. 
협력의 방향을 모색함에 있어서 여러 가지 方面에서 시도할 수 있다.  마치 물과 시멘트에 해당되는 말씀과 성령의 役事를 선교 사역 현장에서 여러 方面으로 살펴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혹자는 선교사의 靈性방면서 이 役事를 찾아보려고 한다.  선교사가 성령과 말씀으로 충만할 때에 효과적인 협력 선교는 자연스레 이루어진다고 본다.  누가가 지상 명령을 기록 할 때에 말씀의 강조와 성령의 약속을 동시에 언급하였고(눅 24:44-49, 행 1: 3-8), 뿐만 아니라 선교 현장에서 사도(선교사)들 가운데서 성령의 나타나심과 역사 하심을 반복하여 강조한 사실을 든다 (행 2:4, 4:8,31, 7:55, 13:9 등).  분명히 말씀이 왕성할 때에 선교 현장은 선교사들로 붐볐고, 성령이 충만 선교사들이 거대한 선교의 성과를 함께 거두어 드렸다.  그러나, 혹자는 선교사의 훈련 방면에서 이 역사를 찾아보려고 강조한다.  주님께서 삼년동안의 집중적 사역을 선교 사역을 계승할 사도들을 훈련하는데 있었음을 주목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분야임에는 틀립없다.  그런데 Winter같은 선교 史學者는 선교 역사를 통하여 사역 현장을 관리하는 선교 구조가 역동적인 선교 사역을 엮어 왔음에 주목하였다. 사실 모든 선교사들이 협력하는 구조 속에 일원으로 배치되어 있을 때에 선교 사역의 성과가 극대화되어 왔다.  
처음의 두방면은 선교사의 내적 자격 혹은 준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하면, 마지막 방면은 선교사 상호관계를 정립시켜 주는 외적 관계에 관심을 두고 있다.  또 마지막의 두방면은 인적 요소가 큰 반면 첫 번 방면은 신적 요소가 크게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상의 삼자는 상호 보완의 위치에서 협력 사역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이다.  神的要所 (Divine Factor)라고 할 수 있는 성령의 충만 없이는 아무리 잘 훈련된 선교사도 협력의 역사를 이루기 어렵다, 동시에 성령께서는 人的 要所 (Human Factor)라 볼 수있는 선교사가 훈련 되어 있을 때에 사용하셨음을 볼 수 있다.  나아가서 構造的 要所 (Structural Factor)라고 할 수 있는 선교 단체가 제대로 조직되어 있지못하여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에 협력 사역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있음을 보여 왔다.  훈련된 선교사도 선교 단체가 미비 되었을 때에 쉽게 시험에 빠져들고, 성령의 역사도 자주 소멸하여 버리는 실수를 하게됨을 보게된다.  물론 각자의 입장과 형편에 따라서 이 삼자 중에서 Priority를 달리 결정할 수도 있고, 강조가 달라 질 수도 있다.  발제자는  선교 구조적 측면에서 한국 선교 현장을 진단하면서 협력의 방향을 모색하여 보려고 한다.  선교사의 영성 문제나 훈련 문제를 다른 분이 따로 다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선교 구조적 측면에서, 먼저 협력의 當爲性을 성경적, 일반적인 원리들에서 재확인하고, 역사적인 조명과 아울러 현장을 살펴봄으로 협력의 방향을 가늠하는데 참고로 삼으려 한다.  그런 다음에, 선교 현장에서 협력의 방향을 지극히 실제적인 세 가지만 제안하려고 한다.  세 가지 제안 중에서 기초가 되는 현지 선교부에 관하여 발제자 나름의 의견을 개진한 후, 맺는 말로는 이런 제안을 수용함에 있어서 선임 선교사들인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를 나름 데로 언급하여 보려고 한다. 

본론

먼저 “선교 현장에서 협력”이란 용어의 정의부터 해보자.  “선교 현장”이란 선교 사역이 이루어지고 있는 宣敎地를 일컽 갰지만 협력과 결부해서 후원 체재나, 선교 기구가 배제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의 선교 선교 현장이란 선교지를 중심으로 생각하되 한국 교회 선교 전반을 의미하는 廣義的 용어로 사용하려고 한다.  “협력”의 의미도 역시 廣義的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실제로 두사람 이상, 혹은 두 기관 이상이 같은 목적을 가지고 내리느 공동적인 대처를 모두 협력의 범주에 넣어서 생각을 전개해 보려고 한다.  예를 들면 같은 선교지의 동일 선교부에서 함께 하는 사역이나, 타 선교부와 공동 목표를 설정한다든지, 사역이나 使役地의 分擔 등을 보통 협력이라고 부르지만, 같은 수용 기관에서 각각 다른 임무를 맡았을 경우도 두 선교사 혹은 단체가 협력하고 있다고 하고 싶다.  물론 현지 교회나 외국인 선교 단체와 협력을 포함한다.  허지만 여기서는 한국 선교사끼리, 혹은 한국 선교 단체간의 협력이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 됨은 재론을 요하지 않는다.
1. 협력의 當爲性
선교 사역에 있어서 협력의 當爲性을 먼저 敎會論的인 접근을 하여보자.  세계 선교의 지상 명령은 (Great Commission) 교회에 주어졌다.  즉 머리되시는 그리스도가 자기의 몸에게 내린 명령이다 (마 28:19-20, 엡 1:22-23).  몸의 지체끼리는 서로 유기적인 관계 아래 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함 몸의 지체는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만약 지체끼리의 협력이 유지되지 못하고 있다면 머리의 조종을 거부하는 병적인 상태일 뿐이다 (고전 12: 12-27).  결과적으로 지체간에 협력이 없이는 몸의 균형이 유지될 수도 없고, 기능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밥을 먹는 본능적인 기능도 손, 팔, 입, 눈 등등 여러 기관이 긴밀한 협조 체제를 이루었을 때에 제대로 수행된다.  이런 원리가 선교에서 반드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선교 사역을 수행함으로 지상 명령을 순종 할 때에 교회의 本質的인 원리를 따라 협력할 수밖에 없다.  즉 선교사들끼리 혹은 선교 단체가 협력하지 않고는 선교할 수가 없다는 결론이다.  이 원리가 적용되지 못하면 선교 사역이 되지 못하고, 선교 비슷한 것이 되어 버릴 것이다.
다음으로는 협력의 當爲性을 성도의 삶속에서 윤리적인 접근을 통해 재확인하여 보자.  크리스천 윤리의 大綱領인 사랑이나, 주님 섬김의 根本이 되는  충성을 두고 말해 보자 (갈 5:22, 마 22: 39-40).  사랑이란 이웃에게 무엇을 주며, 관심을 가지며, 도움을 주는 것으로 표시하기 마련이다.  이런 사랑의 표현은 곧 이웃 선교사와 협력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또한 이웃 동역 자들을 무시하고는 선교 사역에 충성이 불가능하다.  마치 전장에서 동료 戰士들은 무시한 체 혼자서만 총을 쏘며 적진을 향해 뛰어드는 행동은 참된 용기로 불수 없고 충성스럽다고 볼 수 없다.  지휘관이나 동료의 동의도 얻지 못한 행동을 아무도 충성스런 자세라 하지 않을 것이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의 원리나 온유와 양선, 그리고 자기 절제의 덕목은 이웃 동료들과,  선교 기구와 자연스런 협력의 열매를 맺는다.  自古로 선교사들에게는 고도의 倫理性을 요구하는 이유는 협력이란 측면 때문이기도다. 
또한 일의 효율성 측면에서, 팀이 가져오는 유익은 자기를 중대시키는 것이다.   협력을 통하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보다 훨씬 큰 일을 성취 할 수 있다.  아니 혼자서는 도저히 불가능 한 일을 협력을 통하여서만 이룰 수 있는 일이 허다하다.  이는 일반 경영의 원리이다. 사업을 하는 경영자 치고 이런 원리를 모르거나 무시하는 자는 없다.  성공한 기업인은 이 원리를 잘 지킨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도 창조나 재창조 사역(구원 사역)에서 삼위 하나님께서 팀 사역을 하심으로 협력의 본을 보이셨다 (창 1:2, 요 1:3).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선택하시고, 성자께서는 우리를 구속하시고, 성령께서는 우리로 믿고 거듭 나도록 인치시지 않았는가 ? (엡 1:3-14)  선교의 컨텍스트가 날로 다양화되고, 우리의 선교 세력도 급격히 확장되어 가고 있는데 팀과 분담의 경영 원리에 무지하거나, 이 원리를 무시한다면 한국 선교는 혼란에 빠지고 낙오할 뿐이다. 
2. 宣敎史的 照明
선교 사역에서 협력을 當爲性으로 받아 드리고 있는 성경적인 그리고 일반적인 원리를 바탕으로 宣敎歷史는 진행되어 왔다.  주님은 항상 제자(使徒)들을 팀으로 파송하셨다. 宣敎使役의 모델이랄 수 있는 바울 선교 팀은 항상 여러 명이 긴밀한 협력을 통하여 선교 현장에서 활약하였다. 바울의 경우 사도(宣敎師)들만이 아니고, 보조자들 (補助 宣敎師),  마가와 디모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등등이 동역(協力)하였던 예는, 선교 사역에 있어서 협력에 관해 示唆하는바가 너무나 많고 중요하다.
유럽의 여러 민족들이 복음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선교사들의 거대한 협력 체제를 우리는 목격할 수 있다.  Augustine은 40명의 베네딕트 수도승들과, Columba 와 Columban 등도 수십 명의 수도승들과 팀을 이루어 영국으로, 스코틀랜드로, 그리고 프랑스 지역으로 군대와 같이 진군하여 가서, 유럽 여러 민족들을 십자가로 정복하였다.  수도원이 중심이 되어 군대와 같이 훈련된 선교사단을 파송하였던 중세 교회의 선교 구조를 反 宗敎改革 시대부터 천주교회는 계승하여 왔다.  예수회 그리고 여러 교단(Order)들이 宣敎師團을 중국으로 동남아로, 중남미로, 그리고 아프리카로 파송하여 오늘의 10억을 넘는 천주교 세력을 구축하는 혁혁한 선교 결과를 역사에 남겨 놓았다.  
개신교 선교의 아버지라는 윌리암 케리도 먼저 선교회 (The Particular Baptist Society for Propagating the Gospel among the Heathen, 1792)를 조직하여 협력 체재를 구축한 후에 출국하였고 The Serampore Trio는 선교팀의 표본으로 알려저있다.  미국에서 건초 더미 기도회 출신들이 Andover 신학교에서 Society of Inquiry on Subject of Missions를 조직한 것도 협력 선교에 있어서 선교 구조가 가지는 의의를 잘 설명한다.  결과적으로, 현대 선교에 있어서 천주교회는 수도원식 선교사단1 Benedicts, Franciscan, Dominic, Augustine Orders, 그리고 유명한 Society of Jesus 등을, 개신교는 선교회2 Society for the Propagation of the Gospel in New England 1649, Society for Promoting Christian Knowledge 1698,  Society for the Propagation of the Gospel in Foreign Parts  1701,  Danish-Halle Mission 1705, London Missionary Society 1795,  Netherlands Missionary Society  1797, Church Missionary Society  1799,  Religious Tract Society  1799,  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 1804, 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s for Foreign Missions, 1810, Basel Missionary Society 1815,  Paris Evangelical Missionary Society 1822,  China Inland Mission 1865 등등를 조직함으로 팀 선교하는 본을 보여 왔다.  
팀이 되어 선교지로 출발하여 동역 할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이 팀들이 선교지 안배 (Mission Comity), 성경 번역, 연합 교단 조직 등등 여러 방면으로 우리 모두가 한 몸의 지체임을 선교지에 심어 주었고, 사역의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었다.  또한 오늘 우리들의 모임처럼 교파를 초월한 선교사들의 모임에서, 상호간의 친교를 도모할 뿐만 아니고, 공동 관심사를 두고 협력하는 모임을 서구 선교사들은 정례적으로 하여 오고 있다.  사실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시작도 1910년 Edinburgh에 모였던 이런 선교 대회였지 않는가.
서구 宣敎史는 교단, 혹은 선교 이념, 개인적인 리더십으로 형성된 특정 단체에 의하여 팀으로 시작하여 협력하면서 전개되어 왔다.  한국 교회를 위시한 소위 2/3 세계에 속하는 교회도 例外는 아니다. 어느 누구도 선교 사역만은 한두 개인이나 개 교회가 독단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하였던 역사를 다 알고 있다.  혹시 시작을 혼자 하였더라도 동조하는 세력이 생겨서 팀 사역을 이루었고, 적어도 현장에서는 가능한 협력을 위해 최선을 다한 기록을 볼 수있다.
3. 한국 교회와 선교 협력
한국 교회 선교역사는 우수한 선교 구조를 유지하여 왔다고 볼 수 있다.  선교사 파송시에 팀을 이루게 하였고,3 장로교회의 경우 제주도나 산동에 파송한 선교사들은 항상 팀이 되었다. 이기풍 선교사는 평신도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았고, 산동 선교에서는 항상 3가정 이상의 선교사 팀을 유지하였다. 파송된 팀도 현지에서 현지 교단은 물론 서구 선교 팀과 협력하여 선교지를 분담하고, 사역도 분담하였다.4 태국에서도 의료 사역, 청년 전도 사역 등, 특수 사역을 현지 교회로부터 요청 받았고, 교수 사역이나 교회 사역도 서구 각종 선교 단체와 동역 하였다. 協力하는 것이 극히 정상적이었고 오히려 독자적인 사역을 생각하여 본적이 없었다.  장로 교회의 경우는 교회 조직상 으례히 전도 목사이던, 外地 선교사이던 간에, 교단 傳道部나 혹은 外地 宣敎部에서 전도 목사나 선교사의 선발, 파송, 후원, 관리되는 것에 대하여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불신하는 사람은 없었고, 또한 선교 사역을 잘 관리하여 왔었다.5 선교사 공의회 시절부터 전도부가 존재하였고, 제주도에 선교사 파송 시에는 외지 선교부를 독노회 안에 조직하여 선교사를 파송하고 사역을 관리하였다. 즉 협력의 선교 구조가 자연스레 형성 발전하여 왔다.
그런데 현대 선교가 시작 하면서 선교 구조면에서 이상기류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즉 1970년대에 새로 일기 시작한 선교의 열기와 함께 차츰 교단 선교부가 개 교회로부터 信賴를 잃기 시작하였다.  교단 선교부가 개 교회의 선교 열심을 수용하지도 못하고 선교비 관리에도 신실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게도니다.  그러자 선교로 뜨거워진 신학생들이나, 소위 비정치적인 순수한 個 교회 목사들이 個 교회 中心으로 선교를 추진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중에 좀더 의식이 앞선 분들은 초교파 선교 단체 쪽으로 헌신을 하여 버렸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더 뜨겁게 불어닥친 선교의 열풍에 휘말린 많은 젊은이들은 대개가 개 교회가 중심이 되어 파송된 선교사들이 되어 있다.6 감리 교회에서는 교회가 아직 선교사를 파송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 이화 여대에서 선교사를 파송 하였고, 장로 교회서는 총회 선교부를 거처서 파송을 하였지만 1970년대부터 충현교회 선교사, 동신교회 선교사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사실 합동측에서 ‘70년대 말까지 22가정의 선교사를 파송하였는데 그중 절반인 11가정이 두교회 (충현교회 7, 동신교회 4)에서 후원하는 선교사 였고, 두 교회는 공공연히 자기 교회 선교사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때를 거치면서 한국 교회 선교 구조는 개교회 중심의 선교 구조로 바뀌어 졌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 교회는 협력을 위한 바람직한 선교 구조를 발전시켜 오는데 지연과 혼란을 겪고 있다고 보고 싶다.  이면에서 초교파 선교 단체나 혹은 외국 선교 단체와 함께 사역하였던 선교사들은 훨씬 좋은 선교 현장 여건에서 사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원하는 개 교회들이나, 협약을 맺은 상대의 국내 선교 단체들은 서구 선교 구조에 제대로 적응해 오지 못하는 경우도 또한 보통이었다.이렇게 다수의 선교사가 개 교회 중심 선교 구조에 매이게 되면서부터 한국 교회는 겉잡을 수 없는 선교의 경쟁 시대로 들어갔다.  개 교회 뿐 아니라 수많은 선교 단체들도 이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끼어들게 되면서 선교 구조는 더 복잡한 양상으로 발전되어 온 것 같다.  그 결과는 선교 현장에 마찰음이 생겨나고, 시끄러운 소리가 되어 담을 넘어 현지 교회나 후원 교회까지 소란스럽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한 지역에 비슷비슷한 신학교를 여러개 세우는 중복 사역으로 나타나는 곳이 적지 않다.  협력과 동역의 아름다운 한국 선교 역사가 경쟁과 분리의 역사로 逆行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협력이란 과제가 한국 교회 선교 발전을 위해 통과해야 할 어려운 시험 과목으로 등장한 것이다.  물론 이런 선교 현장의 불협화음이나 중복 사역의 원인을 構造的인 원인 밖에서도 그 책임 추궁하여 볼 수 있다.  보통의 경우는 선교사의 영성이나 인격 문제라던가, 선교사 훈련 문제등으로 풀어 보려고 하기도 한다.  지당한 시도이다.  그러나 오늘의 현장이 가지고 있는 우리의 선교 구조가 협력이란 무거운 책임은 지는데 앞장 서야할 시점에 이르렀다.  개교회주의 선교에서 벗어나 교단이다 선교 단체적으로 사역을 협력 할 선교 구조를 새로 짜야 할 시점에 우리는 와 있다.  그러므로, 한국 선교는 역사의 백화점에가서 몸에 맞는 기성품을 찾기 어려우므로 맟춤옷과 같은 새로운 선교 구조의 창안이라는 어려운 숙제가 주어 젔다.
4. 실제적인 협력의 방향
이 숙제를 가지고 며칠 모여 씨름함으로 시원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던 가,  혹은 몇 사람이 기발한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하더러도 당장에 이 숙제가 다 풀릴 성싶지는 않다.  또 아무리 좋은 해답을 제시하더라도 선교 구조란 것은 아무래도 眞理 自體와는 별개이다.  그러므로 그 해답은 상당한 기간을 두고 검증을 거처야 할 뿐 아니라, 이 검증의 기간에 희생적인 자세로 인내하며 기쁘게 검증에 자신을 던질 선구자가 또한 요청되 때문이다.  
그러므로,  발제자는 좀더 원론적인 입장에서 해결의 방향을 생각하여 보려고한다.  한국 교회의 선임 선교사들인 우리가 같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꺼리를 내어 놓으려 한다.  또 방법적으로는 현장 소개에서 출발하여 보려고 한다.  풍랑을 만났을때의 요나처럼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는 것이 안전할 것 같다.  그래서 씁쓸하였던 자신의 경험들을 중심으로, 문제되었던 점들을 점검하여 보면서, 나름대로 절실하게 생각하고 있던 협력의 방향을 제시하려고 한다.   
발제자가 속한 예장 합동 교단의 주비 선교부는, 교단에서도 모범 지부로 표창 할 정도로 대 내외적으로 협력 사역을 하고 있는 선교부로 알려져 있다.  현재  4개의 한국 장로 교단과  미국의 1개 교단이7 예장 합동, 통합, 고신, 합동 보수, 그리고 미국의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가 협력하고 있다. 공동으로 필리핀 장로 교단을 개척하는, 즉 共同 目標를 가지고 협력하고 있다.  나아가서 함께 협의하여 선교지 까지 分割하고 있는 형편이다.8 마닐라 북부는 합동측,  북서부는 합동 보수, 마닐라 남부 지방은 통합측,  중부 필리핀은 고신측 하는 식으로 선교 지역을 1991년에 분담하였다. 모두 합하면 100명이 넘는 한국 선교사들과 몇 개의 선교 단체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협력하고 있으므로 하나의 좋은 현장 모델이 될 것 같다.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꽤나 발전된 협력 체제를 이루고 효과적으로 사역을 수행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는 다른 현장과 별로 다를바 없으며 역시 협력의 문제로 신음하고 있는 대표적인 한 선교 현장이다.     
사실 필리핀 선교가 시작될 때부터 협력 사역이 아닌 어떤 형태의 선교 구조도 상상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現場에 두명 이상의 선교사가 투입되자 말자 곧 협력이란 보통 일이 아니란 현실 앞에 직면하였다.  선교부가 조직되기만 하면, 일이 分擔되고, 구성원 피차가 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란 낭만적인 기대는 물거품 같이 살아지는 경험을 하였다.  그런 선교 구조로 말미암아 인간 관계에서도 참으로 어려운 지경에까지 빠지는 아픈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때의 심경은 현장에서 도망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동료와 자신을 원망하여 보다가, 나중에는 협력 선교 자체에 대하여 회의를 가지게 되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여 보자.  신임 선교사 수급 절차가 현지 선교부의 필요나 계획에 이루 지지 않고 있는것이 협력 방해의 출발점이 되었다.  현재까지 현지 선교부의 규정을 따라 선교지에 부임한 선교사 숫자는 40가정 가까운 중에서, 초기의 몇 가정을 빼면, 한두 가정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현지 선교부의 요청이 없는데도 일방적으로 선교사 자신이나, 소위 파송 교회가 필리핀을 자기의 선교지로 결정하여 버린다.  그리고는 선교 현지 선교부에다 신임 선교사의 행차(?)를 준비하라는 통보식 요청이다. 그러니 부임 후에도 使役地와 使役의 선택과 추진도 일방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현상이 1980년대 중반부터는 보편화되어 버려서 이제는 시정을 위한 노력도 포기한 상태이다.  
현지 선교 지부의 운영 규약이 있는데 거의 해마다 수정 보완하여 오고 있다.  현재의 규약은 교단 선교 지부의 대표적인 지부 운영 규약으로 소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단순하고 미비 점이 많던 초기의 규약은 그런 대로 지켜졌으나, 현재의 표준적인 운영 규약은 30%도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결국은 신임 선교사의 수용에서부터 시작하여 언어 준비, 使役地 배치, 사역 관리, 휴가, 임지 변경 등등을 현지 선교부가 좀 도와주는 정도이지 규약에 있는 데로 선교부가 선교사를 관리하지 못하고있다.  억지로 말하면 이런 도와주는 면에서 협력은 되고 있는 셈이다.  즉 피차가 필요로 하고 도움이 되어 주는 관계가 아니고, 각자의 필요만을 위해 이용하는 현지 선교부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선교 단체간의 협력 관계는 더 심각하였다.  처음의 얼마 동안은 대부분의 인간 관계처럼 밀월의 기간이었지만, 차츰 피차 도움을 주고받는 상대에서 경쟁의 대상으로, 심지어 피차 필요한 존재에서 방해 자로 바뀌어져 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런 변화의 배경은 물론 자체 선교 부내에서 협력의 체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점이다.  의견이 통일되지 않은 여러 명으로 구성된 한 기관이, 단일성을 갖추지 못한 또 다른 한 기관과 공동 이익을 추구하려 할 때에 발생하는 복잡성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여러 단체가 참여하고 보면 그 복잡성의 심도가 더해 갈 것은 뻔하다.  그렇다고 필리핀 선교사의 상당수가 필리핀 장로 교단 개척이란 공동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간략하게 살펴본 현장 상황은, 소개한 몇 개의 한국 장로교 선교부들과 미국 장로 교회가 필리핀에서 협력하고 있는 사역이 결과적으로 실제상 아니함만 못한 어정쩡한 협력 사역임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필리핀에 주재하는 10여개의 교파 선교부들을 살펴봐도 형편은 합동 측과 대동 소이하다.  초교파 선교부 역시 내부의 縱的 사역 관계는 조금 나을지 모르나 외부와 橫的 협력 관계는 비슷하였다.  그러므로 선교 현장에서 협력 문제에 관한 한, 필리핀 현장에서 적어도 문제의 핵심들을 노정 시켰다고 본다.  즉,  한국 교회의 선교에 관한 열심과 뜨거운 사명감과 그리고 넉넉한 양질의 자원에도 불고하고, 한국인의 성급함, 선교 지식과 실제 경험의 부족, 또 훈련과 준비 부족, 게다가 個 敎會主義的인 宣敎構造 (Local Church Centered Mission Structure)등등, 흔히 열거하는 한국 선교의 거침돌들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즉 현지 선교부 (Field Mission)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이다.  
바울팀과 같은 사도 행전적인 선교 구조에서도 균열을 피 할 수 없었으며 (행 15: 36-41),  Serampo 의 Trio도 완벽하지는 못하였음을 인정한다. 이런 관점에서 Winter의 선교 역사는 새로운 선교 구조를 요구하여 왔고 또 발전시켜 왔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므로 발제자는 위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이 오늘의 한국 선교 현장에 근거하여서, 기능을 발휘하는 선교 구조(Functional Mission Structure)의 개발에다 새로운 협력의 방향을 두어야 한다고 믿는다.  과감하게 기능을 잃어버린 선교 기구를 개편하려는 용기가 오늘의 한국 선교에서 협력의 지름길이라고 믿는다.  적어도 선교 현장 (Mission Field)마다 다음의 삼단계 조직이 어떤 형태로든 개발되고 발전되어야 하겠다. 
그 첫째 단계로는, 각 族屬과 民族, 文化圈과 나라마다 基本的인 宣敎팀이 되는 “현지 선교부” (Field Mission) 조직과 육성에 最優先을 두자.  타문화 선교(이방인 선교)의 개척자 바울은 처음 안디옥을 출발 한때부터 마지막 로마 언덕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순간까지 팀으로 활약하였던 역사를 기억 하여야겠다.  앞서간 수많은 선배들도 동역 자들과 갈등을 겪으면서도 이 기본 선교 팀을 중심으로 주님을 함께 섬겼고, 공동으로 이방인을 찾아 나섰다.  우리 한국 선교 역사 초기에서도 팀 사역은 기본으로 알고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항상 팀으로 선교 전선으로 행군하여 갔었다.
지금 한국 교회의 선교 현장에는 이런 기본 팀들(Field Missions)이 구성되어 있어도 너무 幼弱하거나, 아예 팀이 없는 상태에서 소영웅 혹은 孤兒 선교사들로 敵前 분열의 혼란 양상을 노정하고 있다.  성령께서 따로 세우시는 팀(행 13:2), 즉 “일하는” 現地 宣敎部 (Functional Field Missions)를 구성하게 하는 것이 急先務이며 협력의 基本이다.  마귀는 한국 교회의 개 교회 주의와 같은 아낄레스 筋을 틀어쥐고 선교 현장을 교란시키는 작전을 쓰고 있는 현실을 直視해야 한다.  이 사탄의 작전에 대응하도록 선교사간의 종적 관계 (Co-ordination) 정립을 기본 선교 팀을 통하여 확립하자.  상황을 바로 판단하기만 하면, 팀을 구성하는 작업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기본 선교 팀 (Mission Unite)은 구조나 形態上 여러 모양이 될 수도 있고, 技能面에서도 다양하게 조직 할 수 있을 것이며, 이 방면에 관해서는 실패하였을 찌라도 임이 경험한 바도 있고, 서구 선교사들이 남겨 준 유산들도 풍성하기 때문이다. 
교단 혹은 초교파나 특수 선교 단체등, 모두가 나서서 현장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지도자를 훈련하며 교회를 설립하는 기본 선교 팀(현지 선교부) 구성과 육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주기를 제안하고 싶다.  바울과 바나바는 갈라 설 때에도 팀으로 갈라서서 자기의 선교지로, 주님의 보내시는 곳으로 갔었지 않은가?   우리 선임 선교사들이 이 방면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우리 형편에 맞는 이상적인 현장 선교 팀을 구성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이를 육성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겠다.
두 번째 단계는, 각 족속과 민족, 문화권과 나라마다 기본적인 선교 팀들(Mission Unites, Field Missions)의 연합 기구 (National Co-operating Organization)를 조직하고 육성하자.  이 단계는 세 번째 단계와 함께 한국 선교사간의 횡적 관계 (Co-operation) 정립을 위한 제안이다.   선교지마다 형편과 처지가 다르면 다른 데로 기본 선교 팀들이 서로 협력 할 수 있는 제도를 개발하여 보자.  이는 한국 선교사 끼리만이 아니고 나아가서 현지 교단들이나 타국 선교사 팀들과도 필요한 협력 체제를 발전시키는 기초가 될 것이다.  이 단계 역시 다양한 형태로 필요에 따라 적절한 구조가 되도록 연구 하여보자.  한국 선교사들은 서로 협력하는 자들이며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각각 자기 몫을 다하고 있는 자들이란 평가가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필리핀에서는 “재비 한국 선교단체 협의회”나 “필리핀 장로교 공의회” (The Presbyterian Council in the Philippines)를 통하여 극히 부분적이긴 하나마 선교지에서 선교사 혹은 선교 단체간에 협력의 물꼬를 열어 가고 있다. 
세 번째 단계로 한국 선교사들의 세계적 협력 체제 (World Cooperating Body)를 구성하자.  이 단계의 일차적인 목적은, 한국 선교 역사의 짧지만 않은 경험과, 그 동안 쌓여진 지식을 한데 모아서 한국 선교의 두뇌 역할을 감당하게 하는데 두고 싶다.  형태와 구조는 어떻게 하던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상임 총무와 같은 직책으로 지속적 리더십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구미의 선교단체 협의회 성격의 EFMA(Evangelical Foreign Missions Association) 나, IFMA (Interdenominational Foreign Missions Association) 식으로 조직하기보다는 EMS (Evangelical Missiology Society) 구조와 기능에 가깝게 하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너무 학문적이지만은 않도록 하고, 단순히 지도급 선교사들의 한국 선교 발전을 위한 협력 모임으로 만들었으면 한다.  그래서 학문 활동을 통한 지도력 공급에 기여 하였으면 한다.  물론 산하에 전문적인 분야 별로, 예를 들면 신학 교육과 같은, 기구를 발전시켜도 좋을 것이다.  나아가서 출판이나 연구 발표를 할 수 있은 선교 지도자의 활동 무대로 이 조직을 운영하였으면 한다.  이번 모임에서 이 제안에 관한 어떤 出口를 마련하기를 기대하여 본다.
5. 현지 선교부와 한국 교회
이 세단계의 제안은 새로운 방안도 아니며 더욱이 기발한 아이디어도 아니다.  협력을 위한 지극히 당연한 기초적인 틀임에도 우리의 현장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이기에 지적하였다.  발제자는 여기서 문제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방향을 제시하려고 한다.  그 중에 첫 단계는 모든 선교 현장에서 협력 사역의 기초가 되는 만큼 현지 선교부 개발을 위하여 아래에서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언급하고 제안을 마치려 한다.  이것은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형편들이다.  그러므로 방향 설정에 참고 資料가 되었으면 한다.  먼저 현재 우리의 선교 현장에 조직 운영되고 있는 기본 선교 팀으로서 현지 선교부의 중요한 형태들을 잠깐 살펴보자.
첫 번째는 구미 혹은 국제적인 선교 단체에 배속되어 있는 형태다.  선교부마다 조금씩은 다른 점이 있다 할지라도 국제적인 팀으로서 현지 선교부 기능이 정상적으로 발휘되고 있다.  파송 혹은 후원 단체의 다양함에도 불고하고 전통적인 서구 선교 단체의 규율이 통하는 선교부이다.  아마도 현재까지는 이 형태가 한국 선교사들에게는 실수가 적고 능률적인 현지 선교부이었던 것 같다.  이런 형태의 선교부에 소속된 선교사들은 비례적으로 숫자가 줄어들고 있으며, 다른 형태의 한국 선교부들의 고민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서구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 선교사들이 차츰 성장을 하면서 국제적으로 리더십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안타까움, 또 후원하는 교회의 독립적인 정신이나 욕심과 선교부의 요구를 조화시키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두 번째는 초교파적인 선교 단체에서 파송 받아서 같은 선교 단체의 선교사들과 현지 선교부를 조직한 형태다.  이런 형태로 규모나 역사가 있는 선교부는 숫자가 많지는 않다.  첫 번째 형태와 같이 서구의 좋은 전통과 한국 교회의 경험도 살린 가운데 상당히 발전되어서 현지 선교부의 기본 기능들이 가추어저 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정착이 되었다 하기에는 시기 상조인 것 같다.  경험 부족으로 현지에서, 그리고 본부에서 사고들이 흔히 일어나고 있다.  그래도 이런 정도의 기능을 갖춘 교파 현지 선교부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세 번째는 초교파 혹은 교파 선교부에서 파송 받아 왔으나 그 파송 선교부의 직속인 아닌 현지 선교부를 조직한 형태다.  어떤 때는 한 선교사의 리더십에 의해서 현지에 자생한 선교부가 되기도 하고 나아가 본국에 후원회 형태로 연락 통로가 되는 조직체를 가출때도 있다.  어떤 때는 기존의 현지 선교 단체 (토착 혹은 국제적인)에 합류한 경우도 있다.  이런 형태도 상당한 경우에는 현지 선교부의 기능이 가동되어서 효과적인 선교가 수행되고 있다.  문제점은 파송 기구의 기능이 제한되어 있고, 현지 선교부와 관계가 미미한 점들이다.  즉 한국 교회로부터 지속적인 인적, 물적 공급을 받지 못하며, 선교사 개인도 본부로부터 현지 선교부와 연관된 보호나 협력을 받지 못한다.
네 번째는 주로 교파 선교부에서 파송을 받아 왔으나 현지 선교부는 이름뿐이고 기능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어서 결과적으로 선교사들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사역하고 있는 형태다.  아마 대부분의 교파 선교사들이 이 형태에 속한 것 같다.  이들 사이에 차이점은 현지 선교부의 기능 면에 있어서 약간의 정도의 차이가 있을 정도이다.  대부분은 현지 선교부라고 부르기에는 기능이  거의 없는 상태여서 교단 선교사들의 친교회 정도로 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실제로는 현지 선교부가 없는 것과 마찬 가지여서 선교사 개인들이 현지 선교부의 기능을 하여야 한다.
다섯 번째는 파송 선교 단체도 현지 선교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형태다.  즉 그나마 형식적인 현지 선교부도 없는 상태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교사는 대개가 개 교회나 기능이 거의 없는 명목상의 선교 단체의 파송 받은 자들과, 심지어는 파송자 없이 선교지로 뛰어 와서 아무에게나 후원을 오청하는 소위 자칭 선교사들이다.  상당수의 한국 선교사가 현지 선교부가 없는 상태에서 개별적으로 뛰고 있다. 
필리핀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은 분류하여 보면, 어림잡아서, 현지 선교부의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는 첫 번째에서 세 번째 사이에 해당하는 선교사는 2-30 % 정도 되는 반면, 현지 선교부 기능이 턱없이 부족하거나 거의 없다 싶이한 네 번째와 다섯 번째에 해당되는 선교사는 7-80% 정도 되지 않을까 한다.  선교지 마다 형편은 다를 것이다.  그러나 전체 한국 선교사 중에서 다수가 현지 선교부의 보호와 지도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하리라 믿는다.  그러면 현지 선교부가 미약한 원인은 어디 있는가?  왜 한국 교회는 현지 선교부가 기능을 발휘하도록 조직 운영하지 못하고 있는가?  현지 선교부의 개발과 성숙을 막고 있는 요소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세기지 질문을 한꺼번에 하여 보면 아래의 요소들로 정리 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경험 부족이다.  한국 선교는 지난 20년 사이에 양적으로는 급 성장을 하였다.  이 양적 성장을 질적으로 따라 잡지를 못하고 있다.  하루 아침에 훌륭한 현지 선교부를 만들거나 운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간접 경험은 얼마던지 할 수가 있다.  즉 서구 선교의 역사를 게을리 말고 연구하고 배워야 한다.  또한 일천 하나마 직접적인 경험도 최대한 살려야한다.  아직도 한국 선교를 주제로한 연구 논문이 너무나 적다.9 Fuller 선교 대학원원의 25년간 학위 논문 중에서 한국교쇠 관계 45편이 대부분 한국 선교를 다룬 것이 아니고 미국 교회의 한국 선교를 다루고 있다. 물론 연구 할 능력이나 여유가 있는자들이 아직은 적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만 의지하고 가만이 앉아 있는 것은 축복을 받을자의 자세가 아니다.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    
두 번째는 개교회 주의다.  이 개교회 주의가 얼마던지 장점이 될 수도 있으나 불행 하게도 한국 교회에서는 부정적으로 발전되어 오고 있다.  교단에서 하는 일은 무조건 신뢰할 수 없고 자기 교회에서 하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헌신하는 이상한 전통이 세워젔다.  앞에서 언급 하였듯이 한국 선교는 개교회 중심 선교 구조에서 성장을 하였다.  무조건 개교회 주의나 개교회 중심 선교 구조를 정죄 한다고 해결될성 싶지는 않다.  정직한 지적과 함께 이해를 통한 긍적정 돌파구를 찾아 내어야한다.  이런면에서 성공한 서구 선교 구조를 단순히 수입 한다고 해결 될 것 같지는 않다.  한국 교회에 맞도록 맟춤옷을 만들어 내어야 한다.   
세 번째는 교육 배경과 민족성이 문제다.  이상하게도 우리 학교에서는 경쟁하는 것만을 열심히 배우는 것 같다.  민족성중의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파하는 이상한 습성 때문 일까?  이런 유치한 경쟁이 개교회 주의와 어울려 한국 선교를 엉뚱한 곳으로 끌고 가고 있다.  적어도 선교는 경쟁할 성질의 사역이 아니고 협력해야 성취할수 있는 거룩한 교회의 임무이다.  그러므로 이 방면은 뼈를 깎는 반성과 냉철한 사리 분별력으로 바로 잡아야 할 한국 선교의 치부요 약점이다.
네 번째는 시대를 분별하는 능력이다.  이 시대는 선교의 마지막 지점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  어디가서 어떻게 하던지 열심히만 하면 성과가 있던 오전이나 이른 오후에 나선 추수꾼과는 다르다.  우리는 오후 5시의 추수꾼이다.  어둡기 전에, 주인이 오기 전에 추수 해야 할 대상을 분명히 알고 주인을 맞이 할 준비를 하여야 한다 (마24:14).  즉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족속들을 향하여 우리의 전렬을 가다듬어야 할 때인 것이다.  이때를 분별하게 될때는 주어진 자원을 아무렇게나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맺는 말

선교 구조적인 측면에서 삼 단계의 선교 기구 조직과 육성을 통하여 협력의 방향을 잡아 나가야 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선교 현장마다 선교 사역을 추진할 기본 선교 팀을 (Field Mission) 조직 혹은 재구성하고 이를 육성할 것을 강조 하였다.  정치적, 지리적 혹은 문화적인 입장에서 구분 되어진 선교지마다 기본 선교팀들의 연합체를 (National Co-operating Organization) 만들도록 권장하였으며, 전체 한국 선교사들을 위한 세계적인 협력기구 (World Cooperating Body) 창설을 動議하였다.  물론 첫째 단계의 기본 선교팀 (Field Mission)은 협력을 위한 기본 단위 일뿐만 아니고, 선교 현장에서 성경적인 기본 선교 세력 (Basic Mission Force)이다. 이에 대한 토론과 어떤 결정적인 행동이 이번 기회에 있기를 기대하면서 현지 선교부에 관련된 몇가지 중요한 요소들을 언급하였다.
발제자는 여기서 위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감에 앞서 확인해야 할 우리 선임 선교사들의 자세를 생각하여 보려고한다.  먼저, 선교 경험이나 지식이 基本的으로는 準備된 자들인, 여기 모인 선임 선교사들인 우리가 앞장 서려는 결단이 중요하고 본다.  선임 선교사들이 현재의 선교 구조적 혼란 내지는 미성숙에 대한 책임을 질 때, 문제는 쉽게 풀어 지리라 믿는다.  이 제안에 도위를 한자면 한국 선교의 발전을 위하여 犧牲的인 使命感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주기를 바란다. 그 다음으로는, 시작부터 전체적인 구조 변경을 시도하는 것보다, 可能한 部分부터 취급한다는 원칙이다.  차츰 하고 있는 일에 확신을 가지게 되고 열매가 있을 때, 점차 그런 변경 시도를 전체 선교 구조로 확대시켜 나가는 漸進的인 개선의 자세를 말한다.
 
참고문헌 :
Kane, Herbert. 1982. A Concise History of the Christian World Mission. Grand Rapid: Baker
Kim, Hwal-young, 1994. From Asia to Asia. PCP: Manila
Kyle, John. ed. 1979. Missions Manual and Handbook of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PCA: Atlanta.
Lane, Denis. 1990. Tuning God’s New Istruments. OMF: Singapor. 
Winter, Ralph. 1993. “How to Run a Mission Society” World Perspective’s Student Guide. C-1-9. US Center  for World Mission: Pasadenan
총회 선교부. 1994. 총회 선교 정책. 총회 선교부 : 서울
장로교 주비 선교부 운영 규칙
각주
  • 1
    Benedicts, Franciscan, Dominic, Augustine Orders, 그리고 유명한 Society of Jesus 등
  • 2
    Society for the Propagation of the Gospel in New England 1649, Society for Promoting Christian Knowledge 1698,  Society for the Propagation of the Gospel in Foreign Parts  1701,  Danish-Halle Mission 1705, London Missionary Society 1795,  Netherlands Missionary Society  1797, Church Missionary Society  1799,  Religious Tract Society  1799,  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 1804, 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s for Foreign Missions, 1810, Basel Missionary Society 1815,  Paris Evangelical Missionary Society 1822,  China Inland Mission 1865 등등
  • 3
    장로교회의 경우 제주도나 산동에 파송한 선교사들은 항상 팀이 되었다. 이기풍 선교사는 평신도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았고, 산동 선교에서는 항상 3가정 이상의 선교사 팀을 유지하였다.
  • 4
    태국에서도 의료 사역, 청년 전도 사역 등, 특수 사역을 현지 교회로부터 요청 받았고, 교수 사역이나 교회 사역도 서구 각종 선교 단체와 동역 하였다.
  • 5
    선교사 공의회 시절부터 전도부가 존재하였고, 제주도에 선교사 파송 시에는 외지 선교부를 독노회 안에 조직하여 선교사를 파송하고 사역을 관리하였다.
  • 6
    감리 교회에서는 교회가 아직 선교사를 파송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 이화 여대에서 선교사를 파송 하였고, 장로 교회서는 총회 선교부를 거처서 파송을 하였지만 1970년대부터 충현교회 선교사, 동신교회 선교사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사실 합동측에서 ‘70년대 말까지 22가정의 선교사를 파송하였는데 그중 절반인 11가정이 두교회 (충현교회 7, 동신교회 4)에서 후원하는 선교사 였고, 두 교회는 공공연히 자기 교회 선교사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때를 거치면서 한국 교회 선교 구조는 개교회 중심의 선교 구조로 바뀌어 졌다고 볼 수 있다.
  • 7
    예장 합동, 통합, 고신, 합동 보수, 그리고 미국의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가 협력하고 있다.
  • 8
    마닐라 북부는 합동측,  북서부는 합동 보수, 마닐라 남부 지방은 통합측,  중부 필리핀은 고신측 하는 식으로 선교 지역을 1991년에 분담하였다.
  • 9
    Fuller 선교 대학원원의 25년간 학위 논문 중에서 한국교쇠 관계 45편이 대부분 한국 선교를 다룬 것이 아니고 미국 교회의 한국 선교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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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활영 원로선교사(장양백사모) -

1942년 12월 25일생, 장양백 사모와 1남2녀, 대구동신교회 1977년 필리핀 파송 선교사, GMS 초대사무총장, GMS 필리핀선교사, 필리핀 장로회신학교 초대학장, 필리핀 선교사자녀학교 초대교장 등 주요저서로는 그의 나라 그의 순례자/ 2018 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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