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우리(강승삼/최을선)는 1991년 2월 25일 나이지리아를 떠나 27일에 한국에 도착했다. 28일에는 총회본부에 와서 총무님께 도착 신고를 했다. 우리의 후원 파송교회인 대구 서현교회 당회장 김중식 목사님과 선교위원장 전재규 장로님께 도착보고를 드렸다. 그리고 총무님께 잠시 말미를 허락받아 셋집을 얻어 짐을 풀고 정리했다. 3월 중순부터 총회 선교국장의 일을 맡게 되었고 정식 총회장(당시 유인식 총회장)의 발령장은 4월 12일에 받았으며, 전임 전동식 목사님과의 이취임식은 4월 17일 거행되었다. 그런데 두 가지 오해가 발생했다. 하나는 대구서현 교회와의 행정상의 오해였다. 다른 한 가지는 총회 선교국장직의 출신 지방의 문제였다.
1. 하나님께서 행정 관계상의 오해와 출신 지방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우리의 후원 파송교회인 대구 서현교회 선교위원회와의 오해란 우리 자신의 행정상의 불찰이었음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그 불찰이란 비록 직접적으로 우리가 총회의 선교국장직을 맡으라는 국제전보를 세 번씩이나 받았을지라도 가부를 결정하기 전, 사전에 후원 파송교회인 대구 서현교회에 먼저 보고하여 허락을 받았어야 했던 것이었다. 나는 두 가지 이유로 오해했던 나의 행정상 불찰을 회상한다.
첫째는, 당시 총회 총무님이셨던 최병환 목사님이 대구 출신이시고, 총회 사무실의 인사권자이시므로 당연히 대구 서현교회와 사전에 의견조율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나의 오해된 생각이었다. 내가 총무님으로부터 첫 번째와 두 번째 전보를 받고 못 간다고 답했을 때 최 총무님께 서현교회와 먼저 의논이 있었느냐 묻는 답신을 해야 했었다.
둘째는, 당시 나이지리아 우체국 우편물배달 지연 시스템의 문제가 있었다. 우편물이 개인이나 주소로 직접 배달되지 않고 우체국 사서함이나 큰 단체의 사서함으로 배달되었다. 우리 쿠파이에는 우체국 사서함이 없었다. 통지가 오면 우리가 직접 260km 거리의 우체국으로 가서 찾아와야만 했다. 국제 우편이나 전보도 같은 시스템이었다. 그러니 한 번 국제전보를 보내고 받는데 많은 날 수가 소요되었다. 예를 들면, 1983년도에 나의 큰 형님 (고 강성호 장로) 소천 전보를 한달 만에 접수했다. 모친이 1984년 4월 부활주일에 천국 가셨는데 소천 전보를 2주 후에 받은 바 있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내가 직접 대구 서현교회의 사전 허락 없이 결정한 것은 나의 불찰이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서현교회와 선교위원회에서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여 주셨음을 감사드리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다음은 총회 선교국장직의 출신 지방의 문제였다. 지금까지 총회 선교국장직은 호남 출신의 몫이었는데 영남 출신이 차지했다는 오해였다. 그것은 잠시였다. 곧 총회의 개혁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총회의 인사정책에 탕평 정책과 전문가 기용정책을 채택하여 모든 면에 전문성과 신뢰성과 미래지향적 발전적 변화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자 곧 이러한 오해는 다 풀렸다. 이 문제 또한 하나님께서 총회를 통해서 해결해 주셨다. 이 문제 해결과 총회선교 발전에 기여해 주신 분들이 많이 계신다. 故人이 되신 분 중에 최훈 목사님, 이성헌 목사님, 김덕신 목사님, 예종탁 목사님, 신세원 목사님, 이영희 목사님, 노동진 목사님 외 많으시다. 살아계신 분 중에는 김동권 목사님, 길자연 목사님, 심재식 목사님, 하대성 목사님, 김도빈 목사님 외 많으시다.
2. 하나님께서 총회 선교원칙과 선교 철학을 세우라는 마음을 주셨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게 총회 선교국장직을 맡겨주셨습니다. 와서 보니 할 일이 태산같이 많아 보입니다. 선교지 사역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총회의 역동적 정치 관계성이 저에게는 더 어렵게 보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저를 이곳에 보내주셨으니 제게 역동적 관계성을 잘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그리고 제가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가르쳐 주옵소서. 주님, 제게 확신과 선교행정과 정책과 전략, 그리고 총회선교가버넌스를 잘 진행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옵소서.’ 주님께서 내게 다음의 말씀을 주셨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 (His Kingdom)와 그의 의 (His Righteousness)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마 6:33)
그리하여 나는 모든 선교행정과 정책을 ‘하나님 나라’ 중심으로 하라는 메세지로 받고 이를 선교원칙으로 삼았다. 본문에서의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는 ‘예수님’ ‘예수님의 희생으로 율법의 완성’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이 우리 교회와 선교사에게 요구하시는 희생의 총체성’ 그리고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몸 된 교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핵심은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모든 그리스도인과 선교사들의 공동목표가 될 때 화합과 협력과 팀 사역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믿음을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하나님의 나라’ 선교원칙으로 선교 철학을 세우라는 맘을 주셨습니다. 이는 곧 선교하는 모든 영적 지도자와 모든 현장 선교사에게 자아 존중감 (Self Esteem)을 견지하고 믿음으로 선교하기 위함이라는 생각에서다.
첫째, 선교사는 가장 큰 복을 주는 사역자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은 ‘예수님을 믿는 복’이다. 예수님 안에 모든 복이 있고, 하늘의 기업이 있다. (창 12:1~3)
둘째, 선교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선교사는 하나님께 붙들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함을 받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끊임없는 기도는, “주님, 저를 끝까지 붙들어 사용하여 주옵소서. 사울왕과 가룟 유다처럼 버리지 마시고, 바울과 디모데, 베드로 요한같이 끝까지 붙들어 사용하여 주옵소서.”
셋째, 한 번 선교사는 영원한 선교사이다. 선교사의 소명에 대한 헌신은 날마다 새로워야 하고, 주님에 대한 충성심이 변함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사역하거나 국내에서 선교 행정 사역하거나 그곳은 선교 현장이기 때문이다.
넷째, 선교사는 ‘산모’만 되지 말고 ‘산파’가 되는 선교사여야 한다. 선교사는 가서 복음을 전하여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 제자 양육과 교회 세우는 사역을 한다. 이것은 ‘산모’ 역할이다. 선교사는 적절한 시기에 현지 제자에게 리더십 위임과 이양을 해야 건강한 선교라 할 수 있다. 세운 제자와 교회를 제자 양육, 교회 개척, 그리고 선교하게 하는 것이 ‘산파’ 역할이다. 그들이 그들 스스로 선교 동원하는 것이다.
다섯째, 선교사는 ‘그는 흥하여야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세례 요한의 철학을 견지하라. 언제나 나를 통해서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지게 되는 삶을 살라. 언제나 현지의 내 제자/교회는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는 정신을 가지라.
여섯째, 선교사는 ‘교회’를 중요하게 여기라. 교회는 예수님의 지상 계명과 문화명령과 지상명령을 준행하는 살아있는 예수님의 몸이며 선교사와 함께 기도하며 선교사역을 하는 거룩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종말에 세상과 세상 권력은 없어지겠으나 ‘교회’야 말로 ‘영원한 천국’으로 들리어 올라가게 된다.
일곱째, 선교사는 화목과 협력과 팀 사역을 중요시하라.
여덟째, 선교사는 항상 부지런히 자신을 개발하라. 자신을 개발한 만큼 하나님께서 선교사역의 폭을 넓혀주시고 또한 선교 현장의 교회와 제자들에게 더 유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홉째, 선교사는 가정사역에 책무를 다하라. 가정사역에 등한시하면 자신과 자녀의 관계, 부부의 사랑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게 되면 현장 사역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열 번째, 선교사는 안식년도 사역임을 명심하라. 그래서 안식년이라 하지 않고 고국 사역(Home Assignment)이라 하지 않는가! 바로 이때가 교회와의 관계를 증진하고 부모 친지들과도 유대를 돈독히 하며 자신을 집중적으로 개발 할 수 있는 기회이다.
3. 총회 선교국의 급선무는 신뢰성 회복과 전문성 인정이었다.
나는 총회 선교국장직을 맡으면서부터 밤낮 가리지 않고 일했다. 나는 총회 선교업무에 급선무가 다섯 가지로 진단했다. 총회 선교국의 신뢰성 회복, 성경적 선교 비전의 제시, 선교 전문성, 선교 협력 그리고 성경과 선교지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선교정책과 행정을 위한 선교가버넌스의 올바른 이행이었다.
지금까지 총회 선교재정에 대한 불신은 너무나 컸다. 나는 신뢰성 회복을 위해서 선교사 재정 창구일원화와 선교사 재정 전산화 시스탬을 구축했다. 동시에 총회 선교사 파송 창구일원화 정책을 총회에 허락을 받았다. 또한 선교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 총회에 알맞은 총회 선교정책과 선교사 행정 메뉴얼을 완전히 새롭게 수정 보완하고, 선교사 파송 규정을 제정하여 총회의 허락을 받아 시행했다. 그리고 선교 기도와 선교 홍보 및 선교 교육을 위하여 매년 ‘속 사도행전’과 계간지 ‘미션저널’을 발행하여 총회 산하 전국 (당시) 오천여 교회에 발송했다. 이를 위해서 당시 함께 수고해 주신 안동기 선교사, 정지영 장로, 박준원 권사께 감사를 드린다.
총회 선교사의 지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질을 높이기 위하여 총신대학교 재단 이사회에 선교대학원 설립을 총회장 명의의 공문으로 제안하였다. 총신대학교 재단 이사회(이사장 배태준 장로)는 추진위원회 (위원장 배태준 이사장, 서기 강승삼 총회 선교국장)를 조직하였다. 그 후 운영이사회 심의를 거쳐 1991년 9월 총회에서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선교 행정의 원활성과 선교사 보호, 결속과 사역 협력과 팀 사역을 위하여 각 나라 족속에 맞추어 선교지부를 조직 형성했다. 매해 주기적으로 후원 파송교회 목사님들과 장로님들과 총회 선교부원들을 모시고 각 지역을 방문 격려하고 지부결성과 팀 사역을 지도하였다.
다음은 하나님께서 저를 7년간 예장총회(합동) 선교국장직 수행을 통하여 하신 사역을 간략하게 요약해 본다.
4.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첫해에 (총회 제76회 1991년 9월) 하게 하신 중요사업은 다음과 같다.
나는 1991년 3월 15일 전임 총회선교국장 전동식 목사님의 후임으로 총회 선교국장직을 맡아서 사역을 시작하였다. 총회 제76회기 동안의 중요 선교행정과 정책 사역을 10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총회 선교사 파송 창구일원화 정책을 시행키로 했다. 지금까지 노회나 개 교회 파송의 경우가 허다하여 선교사 보호 및 관리행정의 일관성이 없었다. 그리하여 총회 선교사 파송 창구를 총회 선교국을 통해서 선교훈련원(MTI) 이수를 필수로 했다. 이를 잘 시행하기 위하여 모든 서식과 매뉴얼을 제정하였다. 1) 선교사 후보자를 위한 네 가지 매뉴얼이다. 선교 헌신자 자기진단서; 개인진단 및 자기 발전을 위한 목표 설정; 선교사 프로파일(Profile)-선교훈련 목표 점검표; 그리고 선교신앙고백의 성경적 교리 동의서(안) 등이다. 2) 총회선교사 후원 및 파송협약서에는 관계자 5명의 서명을 요했다. 즉, 선교사, 교회 담임목사, 교회 선교위원장, 총회선교국장 (GMS 사무총장), 총회선교부장 (GMS 이사장) 등이다. 그리고 선교사의 유언장을 쓰게 하였다. 이 모든 서식은 총회(현재는 GMS) 선교 매뉴얼에 수록되어 있다.
둘째, 선교 현장의 지역마다 선교지부 조직을 시행키로 했다. 선교 현지에서 총회 선교사들을 보호, 협력, 지휘 통괄할 수 있도록 함이 그 목적이다.
셋째, 총회 선교국에 국제 선교협력부를 신설하였다.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총회 선교부와 국내외 여러 건전한 선교 단체들과의 협력과 팀 사역, 그리고 이중회원권 선교사들을 보호하고 행정상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최을선 선교사가 수고해 주었다.
넷째, 파송된 목사 선교사 사모를 정식 선교사로 인준하기로 하였다. 목사 선교사 남편은 선교사인데 부인은 선교사로 인준되지 않았었다. 총회 헌법에 목사만 선교사 자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총회 헌법 수정을 하기로 하고 기왕에 파송된 사모들도 선교사로 인준한 것이다.
다섯째, 평신도 신임선교사의 자격 기준을 상향조정 하였다. 신체 건강하고, 학력은 대졸과 특기 자격증 취득, 신학교 1년 이상 또는 성경통신대학 수료, 선교신앙 고백의 성경적 교리 동의서, 총회 선교정책 순응 서약서 제출 등이다.
여섯째, 선교훈련원(MTI)의 소속을 총신대에서 총회 선교국 직속으로 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선교후보자 훈련을 총신대 부속 선교훈련원에 위탁했으나 선교정책과 선교 행정 관리상 총회 선교국 직속으로 해야 원만했기 때문이었다. MTI는 1992년 8월에 총회 선교국 직속 선교훈련원이 되었다.
일곱째, 총회 선교사의 건강을 위해 의료보험제도를 추진키로 했다. 이 제도를 추진하기 위하여 ‘상호의료보험 기금’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 나는 교회를 통해서 후원금을 마련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내가 혹 교회의 설교를 부탁받으면 교통비나 사례비를 이 기금에 넣기도 했다. 약 10억 원 정도의 기금이 마련되었다.
여덟째, 총회 헌법에 선교사를 목사 선교사만 인정한 것을 평신도 선교사를 인정해 줄 것을 헌의하여 총회의 허락을 받았다.
아홉 번째, 동부아프리카 선교대회를 개최하고 케냐와 우간다에 지부를 결성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각 지역에 선교지부를 결성하기 시작했다.
열 번째, 총회 선교재정 창구일원화 정책을 시행하였다.
총회 선교재정 창구일원화 정책을 시행하게 된 이유는 네 가지였다. 1) 지금까지 총회 선교국의 선교사 재정정책과 규정이 없었다. 2) 과거 총회 선교부의 불신임으로 인해 후원 파송교회가 직접적으로 선교사에게 송금함으로 선교사 재정 파악과 행정적 관리가 전혀 없었다. 3) 총회 선교사 재정에 대한 건전성과 투명성이 없었다. 4) 총회 선교운영 규칙 7항 <선교 후원금 관리> 세칙을 상세히 만들어 선교사 재정의 건전성과 투명성을 기했다. 과거 개개인 또는 개교회의 송금 비용의 낭비가 컸다. 그래서 선교재정 안전성, 절약성, 그리고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문 재정 담당 간사를 두고 모든 선교재정을 컴퓨터 전자 시스템을 도입하여 운영하였다. 제83회 총회 보고서 (1998년 9월 22일) pp. 183~187. 그리고 처음에는 1년에 총회 감사를 포함하여 4차례의 감사를 받았다. 선교 재정의 투명성이 인증되자 1년에 두 차례의 감사를 받았다.
5.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게 하신 1998년 2월 나의 사임까지 7년간의 중요사업은 다음과 같다.
나는 총회 선교국장직을 수행하면서 총신대학교 선교대학원이 개원(1992년 3월) 한 이래 강사(월요일)로 섬겨왔다. 당시 김의환 총장께서 1997년부터 교수로 섬기라고 하셨다. 나는 총신대학교 교수 인사위원회를 거쳐 전임강사 1년 후 1998년 3월부터 부교수로 임명되었고, 곧 선교대학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전임강사 1년 동안은 총회 선교국장직을 겸임하면서 후임을 천거하기로 하였다. 나는 총회 선교국장 후임을 김활영 선교사님 (지금은 천국 가심)을 추천하였고 그도 쾌히 승낙하였다. 그리고 그는 총회장님으로부터 총회 선교국장으로 임명되었다. 나는 그가 총회 선교국장직을 맡은 것이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다.
하나님께서 내가 총회 선교국장직을 사임하기까지 나를 통해서 하신 중요 사역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요약해 본다.
첫째는 총회 선교의 활성화를 위하여 국내 지역별 선교세미나를 실시하였다. 주제는 ‘세계선교와 2000년대를 향한 전진’. 목적은 총회 산하 개교회 선교 활성화 및 촉진, 선교 의식 고취와 현지 선교 정보를 통한 선교의 도전, 그리고 선교 정책 설명 등이었다. 강사는 선교사 경험 있는 선교학자, 현직 선교사, 그리고 선교 열정의 목회자들을 모셨다. 선교 정책 포럼과 설명은 내가 맡게 되었다. 대상은 목회자, 교회 선교위원들, 선교에 뜻있는 재직들과 청년 대학생들이었다.
둘째, 총회 선교센터 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최훈 목사, 상임 총무 강승삼)를 조직하여 센터건립을 추진하여 일차적으로 동도교회(최훈 목사님)로부터 건립 대지의 희사 약속을 받았다. 선교센터의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안이었다. 총회 선교사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고, 선교 행정 사무실, 선교사 케어 상담소, 안식년 선교사의 쉼터, 선교사 자녀케어, 선교훈련원 운영, 선교사 계속교육 진흥원 운영, 선교연구소 등 공간의 필요성이 많았다. 그런데 당시 총회 선교국은 총회 사무실 한쪽 구석의 좁은 공간에서 책상 몇 개 놓고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셋째, 총회 ‘해외선교위원회’를 1992년 11월 8일 창립하였다. 여기서 많은 의문이 생길 것이다. 이유는 복잡하면서도 간단하다. 총회 선교부는 총회가 폐하고 난 뒤 1년 동안 총회 선교행정과 정책을 총회 선교국에 맡겨서 해나가야 하는 여러 상비부 중 하나의 상비부이다. 1년이 지나면 총회 총대가 다 바뀔 수도 있다. 결국 일은 사람을 통해서 실행되지 않는가! 그런데 문제는 1년이 지나 사람(총대)이 바뀌니 지금까지 세워서 실행해 오던 총회 선교 정책의 혼선 도래의 가능성이 있다는 단점이 있다. 또 하나의 단점은 진작 선교사를 주 후원 파송한 교회들은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총회 선교부는 총회 정치적 행정 라인이 되고, 총회 해외선교위원회는 실재적으로 선교사 파송교회로서의 주인의식을 가지고 선교사 케어와 선교정책 시행의 당사자로 참여할 조직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뿐만이 아니라, 때가 되면 나는 우리 총회 선교사역이 총회 산하의 신학교와 기독 신문사처럼 자체 독립기관이 되어 총회 세계선교회(GMS)가 되기를 꿈꾸며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일을 위해서 수고하신 분들이 많으시다. 故 이성헌 목사님, 故 최훈 목사님, 김동권 목사님, 故 이성택 목사님, 故 신세원 목사님, 문갑천 목사님, 김도빈 목사님, 故 노동진 목사님, 故 이영희 목사님, 길자연 목사님, 심재식 목사님, 하대성 목사님, 김윤배 목사님, 故 이종영 목사님, 김춘환 목사님, 박무용 목사님 등등 많으시다.
현재의 GMS 센타 마련에 가장 핵심적 역할을 해 주신 분은 심재식 목사님(증경 GMS 이사장, 현 GMS 명예선교사)이시다.
나는 총회 해외선교위원회의 상임 총무직을 명받아 실행위원회 10개 분과위원회를 조직 구성하여 모든 후원 파송교회의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각 분과에 참여하여 선교행정과 선교정책을 시행하도록 의견을 모았다.
1. 교포선교 연구 분과위원회 2. 공산권 선교 연구분과위원회
3. 무슬림 권 선교 연구분과위원회 4. 국제 협력선교 분과위원회
5. 선교훈련원 운영 분과위원회 6. 선교정보 및 교육분과위원회
7. 선교재정 분과위원회 8. 선교사 자녀교육 분과위원회
9. 선교사 후생대책 분과위원회 10. 선교사 장학분과 위원회
넷째, 선교계간지 ‘미션 저널’ 발행과 ‘속사도 행전’을 발행하였다. ‘미션 저널’의 목적은 총회 선교홍보, 선교를 위한 기도, 선교 교육, 선교정보 교환, 선교재정 창구일원화 정책 실현 등을 위하여 1992년 여름호부터 발행하여 5천여 교회에 발송했다. 특이한 사항은 이 ‘미션 저널’의 부록에 ‘선교사 재정후원’의 공개를 통해서 ‘선교사 재정 창구일원화정책’ 실현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속사도 행전은 매년 총회 선교사의 사역 보고서와 현지 선교정보를 편집하여 한 권으로 발간하여 역사적 자료를 삼기 위함이었다.
다섯째, MTI와 연계하여 각 지역에 YMTC(Young Men’s Training Course)와 평신도 선교훈련원(LMTC)를 세워 운영하였다. 나는 MTI 원장을 겸하여 맡아서 열심히 섬겼다. MTI 산하 YMTC를 LMTC로 병합하여 운영하였다. 이 LMTC는 총회 선교사 동원과 훈련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YMTC와 LMTC의 기획과 운영에 백신종 목사가 크게 공헌하였다. 백신종 목사는 캄보디아 선교사와 “단기선교 퍼스펙티브” (두날개: 2003)외 저술했고, 현재 미국 볼티모어 시에 있는 “벧엘 교회” 담임목사로서 선교적 목회를 잘 감당하고 있으며 2남 2녀의 아버지이며 나의 사랑하는 사위이다. MTI 운영의 원활을 위하여 MTI 운영이사회를 조직하였다.
여섯째, 공산권 AX 지역의 선교사역 협력과 선교사 케어를 위하여 중총 공사를 설립(1996년) 하였다. 중총공사는 동북지부, 중부지부, 남부지부로 조직했다. 안전을 기하기 위해 본부에 별도의 전화기를 사용하였다.
일곱째, 미전도종족 입양본부 (AAP)와 연계하여 총회의 550 미전도종족 입양 계획을 세워 종족입양 운동을 전개하였다.
여덟째, 선교사 계속교육을 위해 현지 Directors를 임명하여 진행하였다. 현재는 GMS에서 선교사 계속교육 진흥 개발원(국제개발 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필자가 KWMA 사무총장 재직 시에 (사)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에서도 선교사 계속 교육 진흥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노봉린 박사님과 필자가 아세아 신학연맹(Asia Theological Association)에 제안하여 한인 선교사 계속 교육의 학위과정인 Asia Graduate School of Theology (AGST-Pacific)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2023년 현재, 이사장 박형용 박사, 노봉린 박사에 이어 지금까지 부총장직으로 섬기던 임경철 박사를 총장에 추대하여 잘 진행하고 있다.
아홉째, 국내 외국인(다문화) 사역을 위해 비거주 선교사 제도를 제정하여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1997년 10월 16일에 총회 외국인 근로자 선교협의회 정관을 만들어 총회를 개최하고 창립 예배를 드렸다. 제83회 총회 보고서 (1998년 9월 22일) pp. 220~221.
열 번째, 총회 선교운영규칙을 제정하여 1991년 9월 제76회 총회에서 인준되었다. 1993년 일부 수정했다. 1994년에는 총회선교부와 총회 해외선교위원회의 인준과 총회 전체 선교사 대표회의에서 협의 완료하여 총회에서 재인준을 받았다. 여기에 선교사의 종류와 명예 선교사, 은퇴 선교사, 전문인 선교사, 원로선교사 제도를 보완하였다. 그리고 1995년과 1996년에 일부 수정하였고 1998년에도 일부 수정되었다. 위의 책 pp. 169~194를 참조하시라.
열한 번째, 총회 선교정책 제7장 선교사의 의료 및 후생관리에 대한 세칙으로 총회 선교사 의료관리 세칙을 제정하여 1995년 10월 1일부터 시행하였다. 해선위 제7차 결의로 1997년 7월 22일 수정 보완하였다. 위의 책 pp. 195~199을 참조하시라.
열두 번째, 대한예수교장로회 세계선교회(GMS) 이사회 정관을 만들어 총회 선교부와 총회 해외선교위원회를 거쳐서 제82회 총회 (1997년 9월)에 제출했으나 통과되지는 못하고 1년 더 연구하기로 하였다. 1년 후 1998년 9월 제83회 총회 (길자연 총회장, 故김활영 선교국장 때)에서 통과되었다. 위의 책 pp. 163~168을 참조하시라. 이를 위해서 심재식 목사님을 비롯하여 수고하여 주신 지도자들이 많으십니다.
6. 나가는 글 : 제안
하나님께서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오늘의 GMS가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최근 들어 GMS 만/만/만 선교운동을 전개하는 GMS 이사진들과 본부에 찬사를 보내며 감사합니다. 이제 부족한 종 宣從 강승삼 원로선교사가 몇 가지 제안을 합니다.
첫째, 원로선교사 중에서 특별 이사제도를 두어 선교정책과 선교가버넌스 운영에 반영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처음 GMS 정관에 선교정책을 위한 선교사 이사제도가 있었는데 GMS 이사회에서 ‘선교사는 부목사 급’이라 하여 중간에 삭제하였습니다.
둘째, 예장총회(합동, GMS)의 역사관 설립을 제안합니다. 현재 심재식 증경 이사장님의 제안하신 디지털 역사관도 한 방안입니다.
셋째, 선교사 은퇴 연령을 현재 70세에서 75세로 상향 조정할 것을 제안합니다. 지금은 100세 시대입니다. 또한 현재 한국 세계선교사 통계에서 매년 1천여 명이 은퇴하면 10년 후 2033년이면 1만여 명이 은퇴하게 되고 차세대 선교사의 헌신의 기대는 훨씬 못 미치게 될 것입니다.
넷째, 선교사 은퇴 복지제도를 실질적으로 실현 가능한 방안을 모색하여 실천해 주시기를 제안합니다. 예를 들면, 모든 GMS 선교사는 총회연금제도에 가입한다. 모든 GMS 선교사는 국민연금제도에 가입한다. 가능한 다른 연금보험에 가입하도록 안내한다.
다섯째, ‘총회 헌법 제18장 선교사 제1조 선교사’(1993년 4월 20일 총회 출판국 발행) 란을 수정 보완할 것을 제안합니다. 감사합니다.
필자 강승삼 원로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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