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선교 동향과 총회(GMS) 선교 전략 » 글 김활영 원로선교사
선교 신학의 동향
신학이 신앙생활의 羅針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宣敎神學은 선교를 이끌어 가는 견인차이며 動力線이 된다. 선교 신학의 여하에 따라 선교사역의 내용이 달라지며 색깔이 결정된다. 선교신학을 살펴봄으로 선교전략을 이해 할 수 있다. 또한 逆으로 선교전략을 통하여 선교신학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선교 신학의 동향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먼저 지난 세기의 선교를 이끌어온 선교신학들을 살펴보자.
목차
20세기의 宣敎神學은 전통적인 복음주의의 노선을 벗어나서 휘청거리기 시작하였다. 1928년 예루살렘 선교대회 이후, 신학적으로 進步主義 者들이 影響力을 선교계에도 미치기 시작하였다. 결국은 IMC가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1961년에 WCC에 合倂함으로 선교의 본래 의미가 灰色으로 변하는 과정을 걷는다. 동시에 선교의 지도력도 自由主義 者들의 손으로 넘어가기 시작하였다. 소위 “Missio Dei”가 1952년 Willingen에서 소개되면서, 선교의 주체에 대한 질문에 엉뚱한 방향으로 대답을 하도록 유도하여 갔다. 즉 傳統的인 선교의 주체로서 교회의 사명을 강조하는데 실패하였을 뿐 아니라, 선교의 목적이 소위 人間化(humanization)란 이상한 결론으로까지 발전하고 말았다. 이를 태면 죄의 문제도 사회 현상학적, 심지어 정치적인 측면에서 이해하려는 급진파들이 생겨났다. 나아가 십자가의 道가 解放神學에서 사회혁명의 理論的 근거로까지 비약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선교의 열기가 식어지는 정도에서 나아가, 서구 교회의 존립까지 위협받는데 까지 발전되어 갔다.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날뛰던 자유주의 주도의 선교신학계에 反動勢力이 등장하였다. 복음주의자(Evangelicals)들이 그 들이다. 1966년 Berlin 선교대회는 복음주의자들이 선교가 생명을 구원하는 복음전파란 사실을 재 천명하는 선포식 이었다. 福音主義 陣營이(Evangelical Circle) 敎會 協議會 陣營을 (Conciliar Circle) 향하여 강력한 挑戰의 멧세지를 전달하였다. 1974년 이후 소위 Lausanne movement를 일으켜 대형화된 새로운 宣敎運動을 통하여 복음주의 적인 宣敎神學의 재정립에 힘써왔다. 傳道가 강조되고 사회적인 문화적인 책임에 대하여서도 무시하지 아니하는 쪽으로 신학이 활발하게 논의되었다. 그 결과 죽어가던 선교 운동이 다시 힘을 얻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복음주의에 가세하여 五旬節主義 자들(Pentecostal Circle)이 恩賜運動을 중심으로 새로운 선교세력으로 등장하였다. 복음적이란 바탕에 오순절 적이란 색깔을 덛부처 나타났다. 독자적인 선교신학이 확립되었다고 할 수는 없어도 선교전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은사운동(Charismatic Movement)을 통하여 교파를 넘어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바야흐로 세계 교회가 오순절 계통으로 무게의 중심이 옮겨가고 있지 않은가 하고 평가하고 있는 자들이 많다.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적어도 서구 선교신학은 세 가지 색깔로 정리되어 가고있다. 자유 혹은 에큐메니칼 진영(Counciliar)과 복음주의 그릅 (Evangelical), 그리고 오순절 주의자들이 (Pentecostal) 이 그들이다. 물론 진영마다 시계추(pendulum)가 가만히 정체되어 있지 못하고 계속 움직이고 있듯이 변하고 발전되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자유진영이 차츰 복음주의 진영의 신학을 수용하듯이 복음주의 진영 역시 사회 책임이다 문화와 인종의 문제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이들 세 가지 색깔의 선교신학은 조직의 배경을 통하여 形成化되고 發展하여 오고 있다. 그들 조직들에는 WCC의 DOM (Department of Overseas Ministry)을 위시하여 WEF 혹은 NAE 계열의 협의체인 EFMA(Evangelical Foreign Missions Association), IFMA (Interdenominational Foreign Missions Association)와, 오순절 계통이 조직체인 AIMS (Association of International Mission Services 1985) 등이다.
물론 이들 조직이나, 이 조직들이 키워오고 있는 각종 선교신학의 이념적 軸은 유럽과 미주 쪽 교회들이었다. 그러나 세기말에 들어오면서 소위 제삼세계 (Two-thirds World) 교회가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아시아와 중남미 그리고 아프리카의 교회들이 목소리를 높히기 시작한 것이다. TWMA(Third World Missions Association)같은 國際組織으로 발전하여 가면서 脫西歐化의 선교신학 구축에 안깐힘을 쓰고 있다.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선교신학 계에서도 양극화 현상, 혹은 획일주의나 흑백 논리를 止揚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대신 多樣化를 인정하고 收容하는 자세로 바뀌고 있다. 자유와 복음주의 양대 진영이 피차 배워 가는 분위기로 성숙되어 가고 있다. 공격적이고 비판적이던 데서 이해하려는 입장으로 발전하고 있다. 자기 반성과 상호이해의 폭이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새 천년의 선교신학의 움직임은 첫째로 福音的인 방향으로 나가리란 추측이 지배적이다. 물론 이 복음적이란 의미는 지난 세기의 복음주의 자들이 남겨준 유산을 기저로 하여 그간에 소개된 다양한 요소들을 수용함으로 수정되고 발전된 복음주의 라고 (Enriched Evangelicalism) 하면 어떨지 모르겠다. 성경을 강조하는 McGavran의 교회성장학적인 복음주의에다, John Stott가 주장하는 Lausanne 계통과, David Bosch의 교회 협의회 쪽에서 보여주는 개혁주의적인 성격, 그리고 오순절 계의 단순하면서도 영적 전투형의 신학이 수용되는 선교신학을 말한다. 다양화되고, 세계화와 지방화가 동시에 이루지고 있는 지구촌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러 상기의 요소들을 큰 거부감 없이 받아 드리는 복음주의 쪽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로 새 천년의 宣敎神學의 성격은 종말론적일 것이다. 救贖史의 마감을 앞두고 전개되는 제 현상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누구나 종말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교회의 세속화다,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를 강조하여 인간화니 하는 사회복음주의 관심은 종말론적인 관심에 삼켜저 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음세기의 선교신학은 상황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서 다양한 형태로 형성될 것이다. 창의적이고 상황에 걸 맞는 복음주의적인 그리고 종말론적인 선교신학이 다음 세기의 선교를 이끌고 가리라 예측한다.
선교 전략의 동향
전략이란 말이(strategy) 大將이란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사뭇 군사적인 용어로써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종합적인 계획을 의미한다. 宣敎戰略이란 일반 전쟁에서 보여주는 목표나 방법과는 판이하지만 그래도 宣敎目標를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써 綜合的인 計劃이란 면에서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특히 정확한 計算이 필수적이라고 Peter Wagner는 강조한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선교전략이 初代敎會에서는 없었다. 그렇다고 선교전략 자체가 없이 선교가 進行된 것은 아니다. 안디옥 교회를 향하여 聖靈께서는 異邦人의 救援을 위하여 두 선교사를 따로 세워 派送하도록 指示하였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主導한 선교전략은 크게 두가지 樣相을 띄고 있다. 하나는 英雄的이고 獻身的인 선교사들을 사용하신 것이고 한 면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복음전선의 최전방에 서 있었던 수많은 平信徒들이었다.
Carey이후의 현대 선교에서는 效果的인 戰略開發을 부지런히 시도하여 왔다. 이후 그의 제창에 의하여 宣敎團體(missionary society)란 효과적인 전략개발 母體가 形成되었다. 이 선교단체는 현대선교 전략에서 基本要素로 자리를 굳혀왔다. 개발된 전략들은 선교단체의 發刊物이나 잡지들로 통하여 사방으로 퍼저 갔다. 또한 중요한 전략 개발과 보급의 수단으로 宣敎大會가 (missionary convention, conference) 나타났다. 그 효시는 1854년 영국의 인도 선교사 Alexander Duff가 주강사가 된 New York에 모였던 Union Missionary Convention이었다. 이런 모임은 國家的인 차원으로, 國際的인 규모로, 나아가서 地域的으로 선교부의 행사로써 자리를 잡아갔다.
이러한 선교 집회에서 제창되고, 선교 단체가 수용한 주요 전략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Henry Venn과 Rufus Anderson 그리고 John Nevius 등이 발전시킨 소위 삼자원리(three-self formula)는 잘 알려진 전략원리다. 이 토착교회 (indigenous church)설립이란 전략은 宣敎界에서 敎科書로 받아 들여졌다. 이 토착원리가 成肉化(incarnation) 혹은 상황화(contextualization)의 원리로 발전하였으나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아니하다. 다만 보완되고 발전 되었다고나 할까. 선교사의 保護主義(paternalism), 財政支援 문제(subsidy), 文化 帝國主義 (cultural colonization), 등등의 비효과적인 전략에 대한 대안으로 改善策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直接傳道, 敎會開拓, 指導者 養育에 있어서 자주 활용되었던 전략들은, 深層전도 (Evangelism in depth), 총동원전도(Saturate Evangelism), 延長 신학교(TEE), 전도집회 (Evangelistic Campaign), 성경 공부반(Home Bible Study) 등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여 왔다. 나아가 間接的인 선교전략으로, 救濟, 敎育, 醫療, 地域開發등 현대적인 용어를 개발하여 總體的 使役 (wholistic ministry, approach)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多樣化, 世界化(globalization)로 말미암아 세계가 지구촌으로 좁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선교사의 종류도 短期 선교사다, 非居住 선교사, 巡廻 선교사, 專門人 선교사와 심지어는 現地人 선교사(national missionary) 등등 기발한 아이디어가 百出하고 있다.
새 천년에는 전략적 측면에서 20세기에 이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속출할 전망이다. 임이 인기를 끌고 있는 未傳道 種族을 入養하는 전략은 세계적인 net-work을 형성하여 문을 걸어 잡그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들, 종교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종족 집단들, 특수 문화 계층에 蟄居하여 외부와 접촉을 꺼리는 자들을 향하여 집요한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이 入養 運動은(adopt a people group) 아직 성과는 미지수이나 확실한 전략으로 21세기는 받아 드릴 것이다. 短期 선교사와 專門人 선교사가 복음을 들고 대 규모의 행진을 할 것이다. 女性 선교사의 활약은 지난 세기와는 다른 차원에서 성과를 거둘 것이 예견된다. 거대한 平信徒 선교사 軍團이 旅行과 硏究와 事業과 기타 여러 가지 방편을 동원하면서 地球村을 누비게 될 것이다. 물론 前 世紀와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通信 수단이 동원 될 것이다. 일일 생활권이 된 지구촌의 交通 수단은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제는 간다(go)는 의미가 점차 새로 해석 되어야 할 것이다. 즉 있는 그 자리에서 멧세지만 보내는(convey) 시대로까지 발전할 지도 모른다.
총회세계 선교회 (GMS) 선교 전략
우리교회는 사도행전의 교회처럼 宣敎的인 교회로 誕生하여, 선교하는 교회로 成長하여 왔다. 우리교회의 선교 역사를 잠깐만 살펴보면 얼른 이 사실이 증명된다. 1876년 만주 땅에서 처음으로 세례 받았던 교인들은 즉시 宣敎師가 되어 고국의 형제자매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생명을 무릅쓰고 압록강을 건넜다. 이들의 전도로 처음 교회가 誕生되고, 교회가 組織되자 말자 곧 선교사를 派送하기 시작하였다. 먼저는 이웃에 있는 僑胞들을 향하여, 다음으로는 이웃 族屬의 형제들을 위하여, 또 역경 가운데서도 굴하지 안하고 먼 곳에 있는 異邦人들을 위해 교회는 엄청난 投資를 하여 복음의 빚을 갚겠다고 나섰다.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한국교회에는 선교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서 삽시간에 세계적인 宣敎勢力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후 체 30년이 못되어 선교사의 숫자나 使役의 範圍나 사역의 水準에 이르기까지 세계 교회가 놀라는 宣敎敎會로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특히 우리 교회는 한국교회 宣敎運動에서 앞장서서 걸어왔다. 다수의 선교 指導者가 우리교회 출신이며, 현재의 先任선교사들도 대부분이 우리교회 선교사들이다. 戰略면에 있어서도 한국적인 새로운 모델을 많이 개발하여 다른 교회에게 본이 된 부분이 적지 아니하다.
우리교회는 창립 시부터 선교 構造面에서 교단 중심으로 팀 선교를 하여왔다. 선교를 감당하는 機構도 시대와 형편에 맞추어 發展을 거듭하여 왔다. 이 면이 다른 교단이나 아시아 교회에 나눠 줄 우리의 經驗이기도하다. 1907년에 西歐宣敎會에서 독립하여 전국을 구역으로 하는 치리기관으로 獨老會 조직과 동시에 外地 傳道局 (Foreign Mission Board)을 두어서 이기풍 선교사를 제주도롤 派送한다. 그때 전도국을 대표한 자는 길선주 목사였고 위원은 12명이었다. 1912년에 총회로 발전하면서 전도국은 계속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후 1940년 (29회)부터는 선교부로 개칭되었다. 1980년에 교단 기구개편 계획에 따라 宣敎局이 신설되어 宣敎事務를 全擔하게 되었는가 하면, 1983년에는 총회 직영 宣敎 訓練院을 설치하였고, 1992년에는 선교부에 병행하여 海外宣敎 委員會를 조직하여 급증하는 선교 업무를 分擔하였다.
1998년에는 大韓 예수교 長老會 總會 世界宣敎會(GMS)란 旣存의 諸 宣敎機構를 統合한 새로운 宣敎機關으로 발전하였다. 敎團的 治理會와 지교회 혹은 개인적인 참여자가 共同으로 宣敎使役을 관장하는 機構인 것이다. 이 기구는 宣敎戰略上 매우 중요한 位置를 차지한다. ‘7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선교의 붐을 따라 발전되었던 支敎會 중심의 宣敎構造에서 파생된 順機能 보다 逆機能的인 要素때문에 선교자원 낭비와 신뢰성 상실이라는 비판을 받고있는 한국선교 이기에 그러하다. 이제 21세기는 世界化 시대로써, 地域敎會에서 世界敎會로, 聖職者 중심에서 平信徒 중심으로, 中央集權에서 地方分權으로, 階級體制에서 네트워크 체제로, 産業社會에서 情報社會로, 代議 民主主義에서 參與 民主主義로, 兩者擇一에서 多種選擇의 시대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런 새로운 시대를 고려하고 탄생된 宣敎機關이 GMS다.
이 GMS가 다음과 같은 重要 戰略을 指向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략을 추진하는데 배경이 되는 GMS의 기본정책이 선교사와 지교회를 섬기는 기구이며, 宣敎師와 支敎會 중심의 선교단체란 점을 강조해야겠다.
먼저 GMS는 더불어 사역이 于先 전략이다. 개선교사는 이웃 선교사와, 지부 중심의 공동 사역을, 이웃 교단 선교사들과 협력을, 나아가, 국제적인 선교 기관과 더불어 지역 복음화을 위해 기도하고 사역을 나누어 맡아야 한다는 원칙이 그리스도의 몸인 宇宙的 敎會論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지 교회들과의 더불어 일 한다는 전략은 모든 사역의 基盤인 것이다. 이런 배경으로,
1. 집중 전략 선교지역 개발한다. (팀사역-team ministry, 종합선교 planed ministry)
2. 지부 활성화한다. (방안 – 우수 지부의 우선 지원 )
3. 타 선교 기관과 협력한다 (공동 회원제 도입)
4. 국제 선교 단체 및 현지 교단과 협력사역 한다.
둘째로 선교의 목표상 우선 순위는 다음과 같다.
1. 교회 개척과 지도자 양성을 항상 우선으로 한다.
2. 미전도 종족 중심 선교에 역점을 둔다. (미전도 종족 입양 운동, 10/40 창문지역)
셋째로 자원 활용 측면에서, 목회자가 우선이기는 하나 효율성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은 종류의 선교사개발에 역점을 둔다.
1. 평신도 자원을 다수 개발하여 활용한다. (LMTC과정)
2. 단기 선교사를 많이 보낸다.
3. 특수 선교사를 활용한다( 전문인, 비거주)
넷째로 효율적인 지원사역을 위해 선교 행정의 전문화 투자를 많이 하려고 한다.
1. 사무실의 제 업무의 전산화
2. 선교사 복지를 위한 제 제도의 개발과 지원
마지막으로 선교연구와 정보수집 등 지원사역(supporting ministry)에 많은 투지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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